밥상/그림 이야기

누리의 미술이야기 No.18 ] 시녀들 - 디에고 벨라스케스 (Diego Velazquez)

마리안나 2010. 9. 17. 12:16

 

누리의 미술이야기17  즐겁고 가까운 예술 줄리안 오피
  벨라스케스, <시녀들>, 캔버스에 유화, 3.18x2.76m, 1965년, 에스파냐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벨라스케스, <시녀들>, 캔버스에 유화, 3.18x2.76m, 1965년, 에스파냐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회화의 놀라움 중의 하나는 그것이 2차원의 평면 안에 3차원의 공간을 마련해놓는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화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식은 화면 너머 어딘가에 관람객의 시선이 한데 모일 수 있는 소실점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공간원근법이다. 지금 보고 있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란 작품에도 이 같은 원근법적 구도가 작용하고 있다. 이 그림의 앞에 서서 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의 시점은 일차적으로 화면 가장 앞에 위치한 난쟁이와 개를 보고, 둘째로 하녀들의 시중을 받고 있는 마가리트 공주를 마주친 후, 마지막으로 저 멀리에서 문 밖으로 나가려는 어떤 신사로 이동한다. 이 신사가 바로 이 그림에서 작용하고 있는 일차적인 소실점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그림 속에서 일차적인 소실점 외에도 우리의 최후의 시선을 사로잡는 의심스러운 요소가 추가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이 그림을 그렸을 화가 벨라스케스와 우리를 향해 등을 돌린 채 놓여 있는 그의 캔버스가 그림 밖에 있지 않고 이 그림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일차적인 소실점의 위치에 서 있는 어떤 신사와 달리, 벨라스케스가 서 있는 이 지점은 너무나 모호하다. 왠지 벨라스케스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지점은 그림 속에서 안개처럼 사라져버린 듯 하고, 더욱이 벨라스케스와 캔버스 사이의 어두운 간격은 그 둘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 것인지를 전혀 알려주지 않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이 그림을 보는 우리의 최후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바로 이 지점인 것이다. 왜냐하면 벨라스케스가 서 있는 안개 같은 지점, 그가 우리에게 보내는 초점 없는 눈빛, 그리고 그와 캔버스 사이의 모호한 틈은 보는 우리에게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지를 파헤치라고 하는 욕망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벨라스케스가 서 있는 이 모호한 틈이 이 그림 속에서 비밀스럽게 작용하고 있는 또 하나의 소실점이다.

 

‘그런데 이 또 다른 비밀스러운 소실점을 보는 우리의 위치는 일차적인 소실점을 보는 위치와는 다르다. 이제 이 그림을 다시한번 본다면, 우리는 저 일차적인 소실점에 서 있는 신사 가 관심 있게 쳐다보고 있는 지점이 캔버스를 마주한 벨라스케스라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즉 우리의 편에서 보자면, 그림을 보는 우리의 시선은 우선 일차적 소실점에 도달하지만, 거기서 다시금 벨라스케스라는 그림 속의 모호한 이차적 소실점으로 이동한 것이다. 사실 저 멀리 문 밖으로 나가려는 신사는 벨라스케스를 궁정화가로 추천한 자로서, 그의 이름 또한 벨라스케스이다. 아마도 우리는 이 작품 안에서 화가 벨라스케스가 캔버스에 도대체 무엇을 그려넣고 있는지를 너무나 궁금해 한 나머지, 우리 자신이 벨라스케스의 분신이 되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림 속의 또 다른 벨라스케스가 되어 화가 벨라스케스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그림의 밖에서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 안에서 그림을 본다.

고양문화재단 전시사업팀 박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