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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의 놀라움 중의 하나는 그것이 2차원의 평면 안에 3차원의 공간을 마련해놓는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화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식은 화면 너머 어딘가에 관람객의 시선이 한데 모일 수 있는 소실점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공간원근법이다. 지금 보고 있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란 작품에도 이 같은 원근법적 구도가 작용하고 있다. 이 그림의 앞에 서서 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의 시점은 일차적으로 화면 가장 앞에 위치한 난쟁이와 개를 보고, 둘째로 하녀들의 시중을 받고 있는 마가리트 공주를 마주친 후, 마지막으로 저 멀리에서 문 밖으로 나가려는 어떤 신사로 이동한다. 이 신사가 바로 이 그림에서 작용하고 있는 일차적인 소실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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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그림 속에서 일차적인 소실점 외에도 우리의 최후의 시선을 사로잡는 의심스러운 요소가 추가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이 그림을 그렸을 화가 벨라스케스와 우리를 향해 등을 돌린 채 놓여 있는 그의 캔버스가 그림 밖에 있지 않고 이 그림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일차적인 소실점의 위치에 서 있는 어떤 신사와 달리, 벨라스케스가 서 있는 이 지점은 너무나 모호하다. 왠지 벨라스케스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지점은 그림 속에서 안개처럼 사라져버린 듯 하고, 더욱이 벨라스케스와 캔버스 사이의 어두운 간격은 그 둘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 것인지를 전혀 알려주지 않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이 그림을 보는 우리의 최후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바로 이 지점인 것이다. 왜냐하면 벨라스케스가 서 있는 안개 같은 지점, 그가 우리에게 보내는 초점 없는 눈빛, 그리고 그와 캔버스 사이의 모호한 틈은 보는 우리에게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지를 파헤치라고 하는 욕망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벨라스케스가 서 있는 이 모호한 틈이 이 그림 속에서 비밀스럽게 작용하고 있는 또 하나의 소실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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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또 다른 비밀스러운 소실점을 보는 우리의 위치는 일차적인 소실점을 보는 위치와는 다르다. 이제 이 그림을 다시한번 본다면, 우리는 저 일차적인 소실점에 서 있는 신사 가 관심 있게 쳐다보고 있는 지점이 캔버스를 마주한 벨라스케스라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즉 우리의 편에서 보자면, 그림을 보는 우리의 시선은 우선 일차적 소실점에 도달하지만, 거기서 다시금 벨라스케스라는 그림 속의 모호한 이차적 소실점으로 이동한 것이다. 사실 저 멀리 문 밖으로 나가려는 신사는 벨라스케스를 궁정화가로 추천한 자로서, 그의 이름 또한 벨라스케스이다. 아마도 우리는 이 작품 안에서 화가 벨라스케스가 캔버스에 도대체 무엇을 그려넣고 있는지를 너무나 궁금해 한 나머지, 우리 자신이 벨라스케스의 분신이 되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림 속의 또 다른 벨라스케스가 되어 화가 벨라스케스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그림의 밖에서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 안에서 그림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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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문화재단 전시사업팀 박유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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