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필하모닉 내한공연 (2009.10.13) 예술의전당
지휘 : 앨런 길버트 (Alan Gilbert)
협연 : 프랑크 페터 침머만(ZIMMERMANN) 바이얼린
공연리뷰> "새 지휘자, 뉴욕필에 윤기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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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필하모닉 내한공연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에그몬트' 서곡의 승리의 주제가 연주되는 동안 오케스트라의 황금빛 울림은 눈이 부시도록 찬란했다.
지난 12일 저녁, 앨런 길버트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오케스트라(이하 '뉴욕필')는 두 번째 앙코르로 연주한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에서 벅찬 클라이맥스를 이끌어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뉴욕필은 뛰어난 개인기와 풍성한 음색을 자랑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오케스트라로 손꼽히고 있지만 지난 몇 년 사이 앙상블이나 음악 해석에 있어 그다지 좋지 않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뉴욕필은 뉴요커 출신 젊은 지휘자 앨런 길버트를 음악감독으로 맞이한 이후 처음 마련한 이번 내한공연에서 지휘자를 구심점으로 단합된 모습을 보이며 의욕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다. 비록 지휘자 길버트의 느긋한 템포 설정과 안전 지향적인 해석에 대해선 음악애호가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지만, 오케스트라 각 악기군의 음색은 전보다 한결 윤기가 흘렀으며 연주 역시 확신에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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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곡으로 연주한 린드버그의 '엑스포'에서부터 뉴욕필은 충만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이 곡은 뉴욕필의 상주작곡가 린드버그가 뉴욕필을 위해 작곡한 첫 작품으로, 새 지휘자와 함께 새로운 시즌이 개막되었음을 알리듯 축제적 분위기로 가득했다. '엑스포'는 한국 초연작품이지만 춤곡과 찬송가 풍의 갖가지 음악과 더불어 할리우드 영화음악 풍의 익숙한 음악 어법도 등장해 청중에게 즉각적으로 다가갔다.
서곡에 이어 금호 영재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최예은의 협연으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협주곡'이 연주됐다. 아직은 대형 무대경험이 많지 않은 신인 연주자인 탓인지 최예은은 전체적으로 여유 없이 달려 나가는 듯한 템포로 일관해 음악적 표현을 충분히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빠른 비브라토를 바탕으로 한 아름다운 음색과 안정된 기본기를 지니고 있어 앞으로의 가능성이 주목된다.
독주자와 오케스트라의 세심한 앙상블이 요구되는 3악장 초입에서 플루트와 독주 바이올린의 부조화는 작은 아쉬움을 남겼으나, 길버트가 이끄는 뉴욕필은 기민한 앙상블을 펼치며 독주 바이올린을 잘 받쳐주었다.
휴식 후 연주된 베토벤의 '교향곡 7번'에서 새로운 수장을 맞이한 뉴욕필의 변화는 여러 면에서 드러났다. 그 중 눈에 띄는 점으로는 첫 곡에서부터 계속된 뉴욕필 현악기군의 자리배치였다.
미국악단의 경우 통상 제1바이올린 옆에 제2바이올린이 있고 무대 오른쪽에 비올라와 첼로를 배치하는 미국식 배치를 따르지만, 길버트가 이끄는 뉴욕필은 제2바이올린 섹션을 무대 오른쪽으로 옮겨 제1바이올린과 마주보는 유럽식 배치를 취해 베토벤 '교향곡 7번' 4악장에서 두 바이올린 섹션이 대화를 나누듯 전개되는 부분을 좀 더 입체적으로 표현해냈다. 또 트럼펫 역시 미국식의 피스톤 트럼펫 대신 독일식의 로터리 트럼펫을 연주하며 좀 더 유럽적이고 잘 정돈된 음색을 지향하는 의도를 보여 흥미로웠다.
귀로 들리는 뉴욕필의 변화는 더욱 확연했다.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은 베토벤 교향곡들 가운데서도 특히 추진력이 뛰어나 흔히 디오니소스의 광포한 춤곡으로 여겨지곤 하지만, 길버트의 안정적인 템포 설정과 세부의 리듬을 곱씹어내는 또릿또릿한 지휘로 인해 베토벤의 무질서한 리듬의 교향곡을 질서정연한 행진곡으로 재탄생시켰다.
길버트는 사전에 치밀한 전략을 세워 이를 성실하게 실천하는 치밀한 군사전략가처럼 작은 디테일 하나 놓치지 않고 오케스트라를 일사불란하게 이끌었다. 그의 전략은 청중이 미리 알아차릴 만큼 충분히 '예측 가능한' 전략이었기에 때때로 지루함을 안겨주기도 했으나, 전보다 한결 정돈된 통일감을 전해준 뉴욕필의 정제된 앙상블은 인상적이었다.
앙코르로 연주된 멘델스존 '스케르초'의 가볍고 날렵한 음향과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에서의 영웅적인 제스처에서도 세계적인 명문 악단의 면모는 충분히 드러났다.
뉴욕필의 내한공연은 13일 저녁 예술의전당에서 계속된다. 이날의 연주 곡목은 독일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프랑크 페터 침머만이 협연하는 브람스의 '바이올린협주곡', 말러의 '교향곡 1번' 이다.
(사진설명; 새 지휘자 앨런 길버트와 뉴욕필의 연주 모습<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공연리뷰> "협연의 진수 선사한 침머만"
뉴욕필 내한공연에서 바이올린 협연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협연(協演)은 한 독주자가 다른 독주자나 악단과 함께 작품을 연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독일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프랑크 페터 침머만이 13일 저녁 예술의전당에서 펼친 뉴욕 필하모닉과의 협연은 협연의 전범이 무엇인지를 새삼 되새기는 자리였다.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군림하고 있는 침머만은 2001년 내한 독주회, 지난해 서울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 등으로 국내 관객에게도 낯익은 연주자.
특히 슈만의 '바이올린소나타 2번', 베토벤의 '바이올린소나타 10번' 등으로 꾸민 2001년 내한독주회는 지금까지도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명연주로 회자되며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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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필의 내한 공연 이틀째인 이날 침머만은 브람스의 '바이올린협주곡'을 협연해 또다시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브람스의 유일한 바이올린협주곡인 이 곡은 '솔로 바이올린이 더해진 교향곡'으로 불러도 무방할 만큼 장대한 규모에 심오한 음악 언어가 더해진 난곡으로 꼽힌다.
하지만 뛰어난 기교와 깊이있는 음악성으로 무장한 침머만 앞에 '난곡'이라는 수식어는 무의미했다.
악기가 신체의 일부인 듯 초절 기교가 필요한 부분에서도 무심하게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그는 확신에 찬 태도와 유려한 연주로 압도적인 무대를 만들어냈다.
또한 뉴욕필의 구성원이라는 착각이 들게할 만큼 오케스트라와 완벽하게 어우러진 그의 연주는 설익은 협연자들의 무대에 익숙해진 관객에게 큰 경이를 선사했다.
7번의 커튼콜 끝에 악기를 다시 잡은 그는 파가니니의 '주께서 왕을 구하셨도다'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앙코르로 연주해 연주자가 도달할 수 있는 기량의 극치를 보여줬다.
왼손으로 지판을 집으며, 줄을 퉁기는 피치카토 주법을 쉴새 없이 구사하며 극한의 난곡을 평범한 곡처럼 연주하는 모습에는 뉴욕필의 단원들조차 입을 다물지 못했다.
뉴욕필이 후반부에 들려준 말러의 '교향곡 1번'도 협주곡 못지 않은 감동을 선사했다.
교향곡에 온갖 요소를 집어넣은 우주적 성격 때문에 다양한 인종, 자연 환경이 혼재된 미국적 기질과도 통하는 말러의 교향곡은 뉴욕필이 즐겨 연주하는 곡목.
뉴욕필은 이날 탁월한 관악기의 역량을 앞세워 말러의 우주적 세계를 선명하면서도, 풍성한 선율로 재현해내 청중의 큰 박수를 받았다.
지난달부터 뉴욕필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젊은 지휘자 앨런 길버트의 안정감 있는 지휘는 전임 지휘자 로린 마젤이 지휘봉을 잡을 때보다 훨씬 나아진 앙상블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뉴욕필의 재도약을 예고했다.
뉴욕필은 청중의 환호에 스웨덴 태생의 작곡가 스텐함머의 '칸타타-상겐' 중 간주곡을 앙코르로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