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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울린 `혼 담은 선율`…정명훈 지휘 서울시향
마리안나
2011. 8. 30. 13:28
유럽을 울린 `혼 담은 선율`…정명훈 지휘 서울시향
![]() 지난 24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페스티벌 공연장인 어셔홀에서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은 명연주로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끌어냈다. <사진 제공=서울시향> 지금 세계 최고 공연 단체들은 스코틀랜드의 문화도시 에든버러에 몰려 있다. 콘서트와 오페라, 댄스, 비주얼아트, 연극을 총망라하는 에든버러 국제페스티벌 때문이다. 뛰어난 기량과 명성을 가진 공연단체만 참가하는 그 자리에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당당하게 서 있다.
서울시향은 지난 24일 밤(현지시간) 어셔홀에서 한국 오케스트라의 저력을 보여주며 기립박수를 받았다. 지휘자 정명훈 예술감독과 단원들의 열정이 들끓는 연주는 세계 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었다. 작곡가의 혼이 담긴 선율로 관객 1800여 명의 마음을 울렸다. 첫 곡으로 연주한 올리비에 메시앙의 `잊혀진 봉헌`은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작품이다. 독실한 신앙심을 가진 작곡가가 십자가에서 예수가 희생당한 내용을 세 부분으로 구성했다. 서울시향의 연주는 마치 유럽 교회에서 듣는 `그레고리안 성가` 같았다. 곡이 시작되는 순간, 현악기 파트의 낮고 중후한 저음부터 아름답고 높은 `피아니시모`(매우 여리게 연주)에 이르는 기나긴 프레이징(악상을 자연스럽게 분할해서 정리)은 청중들의 숨소리마저 죽이며 몰입하게 했다. 심벌즈의 반전으로 시작된 곡 중반에서 정명훈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역동적인 리듬으로 강렬하게 불타오르는 에너지를 생산했다. 고요하고 아주 느린 속도로 진행하는 마지막 부분에서는 악기들의 균형이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서울시향은 곡이 끝날 때까지 고도의 정신적 집중을 잃지 않았다. 세계적인 작곡가 진은숙의 첼로 협주곡 `슈`는 근래에 가장 인상 깊게 들은 현대음악이었다. 협연자 우웨이는 중국 전통 관악기인 `생황`을 개량해 전 세계 오케스트라와 연주하는 생황 연주가. 이국적인 악기가 주는 효과를 노리는 작곡 기법을 일부러 기피해왔던 `정공파` 진은숙은 우웨이의 연주를 듣고 감동한 나머지 이 곡을 쓰게 됐다고 한다. 생황 고유의 정서를 완벽하게 구현하면서도 오케스트라 선율과 세련되게 어우러졌다. 이 곡은 파이프오르간과 흡사한 화성적 울림의 조용한 생황 독주로 시작했다. 다섯 명의 타악기 연주자를 배치해 생황의 여러 음색과 매치했다. 명상을 하듯 동양적이면서도 곡의 전개에 따라 다이내믹한 리듬 운동을 적시에 배치해 매우 미래지향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명확한 짜임새 안에서 생황과 오케스트라는 밀고 당기는 대화를 즉각적이고 반사적으로 이어간다. 탄성을 타고 계속되는 오케스트라와 생황 간의 호흡은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며 장대한 클라이맥스에 이르렀다. 휴식시간 내내 관객들이 생황 협주곡의 울림에서 채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인상적인 연주였다.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비창`은 너무나 유명해서 달리 설명이 필요없는 곡. 서울시향의 연주는 단언코 내 생애에 들은 가장 아름다운 연주였다. 차이콥스키 당대에 채 표현해내지 못했을 온갖 슬픔과 아름다움을 짙은 애수와 서정 어린 사운드로 뿜어냈다. 1악장 도입부에서 콘트라베이스의 깊고도 과장이 없는 섬세한 음질은 비올라, 첼로, 바이올린으로 이어져 성숙하면서도 신선하고 내성적이면서도 웅장한 차이콥스키 음악 특유의 성격 대비를 이상적으로 표현했다. 그렇다. 오케스트라로부터 간절히 듣고 싶었던 바로 그 사운드였다. 세계 최고 마에스트로로 추앙받는 정 감독의 능력은 특히 차이콥스키에서 눈부시게 발휘됐다. 시종일관 완벽한 통제력을 발휘하면서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선율이 흐르도록 인도했다. 5년 후 정 감독의 서울시향이 연주할 차이콥스키를 상상해본다. 틀림없이 지금보다도 더 많은 발전을 이룰 것이다. 하지만 어제의 감동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파장으로 남아 내 생애에 손꼽는 명연주로 깊이 남을 것이며 세월이 갈수록 더한 감동으로 전달될 것을 믿는다. ■ < 용어설명 > ![]() 에든버러페스티벌 : 1947년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시작된 세계 최대 공연 축제. 매해 여름 100여개의 각종 공연이 펼쳐지며 관광객 100여만명이 다녀간다. 올해 주제는 `극서 지역으로(To the Far West)`. 한국과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지역 예술가들을 초청했다.한국에서는 서울시향 외에 연출가 오태석의 극단 `목화`와 안은미무용단이 참가해 호평을 얻었다. [에든버러(스코틀랜드)=첼리스트 양성원(연세대 음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