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레이 페라이어 리사이틀 (2011.10.29) 예술의 전당
[공연소개]
건반 위의 시인 페라이어, 천둥과 함께 돌아오다
New York Times, March 27, 2007
페라이어는 다음주 수요일에 60번째 생일을 맞는다. 하지만 그의 연주는 언제나처럼 나이를 잊은 듯 완벽히 전달되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 속에 각인될 고결함과 기품이 넘쳤다.
The Guardian, April 13, 2007
그것은 보물 같은 경험이었다.
Irish Independent, January 25, 2007
정말 소수의 피아니스트들만이 시적 감흥과 지성, 형식상의 명쾌함 그리고 넘치는 서정성이 겸비된 연주를 한다. 머레이 페라이어처럼……
Washington post, October 30, 2007
명징한 음색, 음악적 본질을 추구하는 깊이 있는 터치로 건반 위 최고의 음유시인이라 추앙 받는 머레이 페라이어는 피아니스트로서는 치명적인 엄지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1991년과 2006년 두 차례에 걸쳐 대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지독한 재활 훈련과 오랜 연습으로 재기를 준비했고, 2006년 독일 리사이틀을 통해 화려하게 복귀하였다. 2007년 미주 첫 복귀 무대를 가졌던 벤쿠버에서는 일명 ‘턱이 빠질 정도의 빠른 스피드’와 ‘더욱더 완벽해진 테크닉’으로 관객과 평단을 놀라게 하였다.
2006년 한국 공연 취소 이후 꼭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며 내한 했던 2008년 공연에서는 시종일관 따뜻한 무대 매너와 열정적인 연주로 객석에 큰 감동을 선사한 바 있다.
[프로그램]
바흐 프랑스 모음곡 5번 G장조
Bach: French Suite No 5 in G Major
베토벤 소나타 27번 E단조, Op. 90
Beethoven: Sonata No 27 in E minor, Op. 90
브람스 4개의 소곡 Op. 119
Brahms: Klavierstucke, Op. 119
Intermission
슈만 어린이 정경
Schumann: Kinderszenen
쇼팽 프렐류드 Op. 28 - 8 F#단조
Chopin: Prelude Op 28 No 8 in F# minor
쇼팽 마주르카 Op. 30 - 4 C#단조
Chopin: Mazurka Op 30 No 4 C# minor
쇼팽 스케르초 3번 C#단조
Chopin: Scherzo No 3 in C# minor
[출연자]
피아니스트 머레이 페라이어 - Pianist Murray Perahia
30여 년 이상을 무대 위 연주자로서 살아 온 머레이 페라이어는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의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전세계 주요 콘서트 홀을 무대로, 또한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연주해왔다. 그는 현재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의 상임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휘와 협연을 맡아 그간 미국과 유럽, 일본, 동아시아에서 연주회를 가졌다.최근에 그는 그의 야심찬 프로젝트인 헨레 원전 악보를 사용하여 베토벤 소나타 전곡 편집을 착수하였다.
그는 2007-2008 시즌을 2007년 10월 3일, 카네기홀의 117번째 시즌에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베토벤 협주곡 4번으로 열었다. 또한 2008년 페라이어는 암스테르담, 취리히, 하리, 비엔나 그리고 런던을 포함한 유럽 투어와 세인트마틴 인터 필즈와 함께하는 미주 투어를 가진다.
페라이어는 아주 폭넓고 다양한 디스코그래피를 자랑한다. 가장 최근에 그는 프란츠 슈베르트의 만년 작품, 소나타 D.958, 959, 960을 녹음하였다. 그의 쇼팽 에튜드 Op.10과 Op.25 전집은 2003년 그래미상 베스트 솔로 기악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바흐 작품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연구의 결과로 그는 최근 바흐의 건반 협주곡 집을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와 함께 발매하였다. 그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두번이나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2001년 그라모폰 상의 <베스트 기악 음반상>을 수상하였다. 이 음반은 15주 동안이나 빌보드 클래식 부분 top 10에 랭크 되기도 하였다. 1999년에 그는 그의 음반 바흐의 영국 모음곡집으로 그래미상을 수상하였고, 1995년과 1997년에는 쇼팽 발라드와 헨델과 스카를라티 음반으로 그라모폰지의 음반상을 수상하였다. 1998년에는 그가 전속으로 있는 소니 음반사에서 25년 전속을 기념하는 4장짜리 기념 음반을 발매하기도 하였다.
뉴욕에서 태어난 페라이어는 그의 나의 4세 때 처음 피아노를 시작하여 후에 매네스 음대에서 작곡과 지휘를 전공하였다. 그 시절 그는 루돌프 서킨과 파블로 카잘스, 그리고 부다페스트 현악 사중주단과 교류하며 대부분의 여름을 말보로에서 보냈다. 또한 그는 미에치슬라프 호르초프스키를 사사하기도 하였다. 그는 그에게 지대한 음악적 영감을 안겨 준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와 깊은 친분을 쌓으며 그의 음악적 역량을 키워나갔다.
1972년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페라이어는 1973년 알데버그 페스티벌에서 그의 첫 연주를 시작하였고 이곳에서 벤자민 브리튼과 테너 피터 피어스와 함께 작업하였다. 그 인연으로 1981년부터 1989년에 걸쳐 여러 차례 피어스의 가곡 리사이틀 때 함께 하였으며, 알데버그 페스티벌의 공동 예술감독을 지냈다. 머레이 페라이어는 왕립 음악학교와 왕립 아카데미 오브 뮤직의 명예회원이며, 리즈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수여 받았다.
고난을 딛고 일어난 세기의 피아니스트
스페인 계 유대인인 부모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1947년 뉴욕에서 태어난 머레이 페라이어는 매네스 음대에서 호르쵸프스키에게 건반악기와 지휘, 작곡을 배웠고 여름 동안에는 말보로에서 루돌프 제르킨과 파블로 카잘스 등과 함께 공부했다. 그는 1972년 제4회 리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본격적인 전문연주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 콩쿠르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당시 페라이어의 스승이었던 호르초프스키가 리즈 콩쿠르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대회 우승자를 등록했다고 하자, 그 소문을 들은 몇몇 경쟁자들이 등록을 취소했다고 한다. 우승 후 페라이어는 세계 곳곳에서 리사이틀을 가지며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1990년 그에게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생겼다. 악보에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베인 것이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상처가 덧나 항생제를 먹게 되면서 건강이 나빠지게 되었고 1991년에는 그 염증으로 인해 손가락 뼈에 변형이 와 여러 차례의 수술을 받으며 몇 년간 피아노를 떠나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긴 치료기간 동안 절망하지 않고 재기를 준비한 그는 1990년대 후반 다시 돌아왔고, 2000년에 출시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은 빌보드 차트(Top 10 Billboard Classical Chart)에 연속 15주나 오르며 음악 애호가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2004년 나은 줄 알았던 손가락 부상이 재발하여 모든 연주 일정을 취소하며 또 한번의 위기가 있었으나 역시 불굴의 의지로 이겨내고 다시 돌아온 머레이 페라이어. 그는 이 시대 진정한 거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