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애린

사리돈이 필요하다/ 김영희

마리안나 2011. 11. 29. 11:26

 

 

 

 

        사리돈이 필요하다/ 김영희

 

 

영양제 보다 진통제가 더 잘나간다는 민 약국

골목에 줄줄이 앉아있는 아낙들

절이고 말린 보따리 봉지봉지 펼쳐놓았다

촌두부 이천 원 청국장 이천 원

무말랭이 시래기 깻잎장아찌 삼천 원,

어디에선가 본 듯

손대중으로 담은 삶의 무게들이 고만고만하다

속내 다 꺼내놓고

명태처럼 덕장에 매달려 얼었다 녹았다

빈 생을 살아온 여인들

굴묵허리 내걸린 시래기 같이

한 줌 햇살에 물기 빠지며 말라가는 생

사리돈이 필요하다

 

 

 

- 시집「저 징헌 놈의 냄시」(리토피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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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제 보다 진통제가 더 잘나간다는 민 약국’이 자리 잡은 곳은 서민주거지역의

재래시장 골목 어귀 어디쯤이 되겠다. 하루하루 버겁게 살아내야 하는 골목시장의

아낙들 ‘손대중으로 담은 삶의 무게들이 고만고만’한 것처럼 고만고만한 일상의 두

통도 ’사리돈’ 한두 알로 다스려가고 있다. 머리 수건을 두르고 좌판에 웅크리고 앉

아 파리를 쫓거나 꾸벅꾸벅 졸면서 덕장에 매달린 명태처럼 꾸덕꾸덕 말라가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한자리를 꿰차고자 하는 나리들이 제일 먼저 달려와서 방긋 웃으며

두 손을 공손히 잡아주고 가는 곳. 그러나 당선이 되면 가장 먼저 뇌리에서 사라져

버리는 곳. 그러니 꼼짝없이 ‘빈 생을 살아온 여인들’이다. 뒷전 굴뚝 허리에 내걸린

물기 잃고 퍼석퍼석 말라가는 시래기 같은 여인들의 상설위로역이라고는 ‘사리돈’이

거의 유일하다. 약효가 다하면 통증이 다시 시작될지언정 그래도 지금은 ‘사리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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