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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바렌보임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회 (2011

마리안나 2011. 8. 11. 00:48

[공연소개]

우리에게 허락된 기적의 4일!

대우증권 창립 41주년 기념공연
다니엘 바렌보임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회

Daniel Barenboim & West Eastern Divan Orchestra
                         BEETHOVEN SYMPHONY CYCLE

POINTS OF THE CONCERTS

1. 살아 있는 전설 다니엘 바렌보임, 마침내 돌아오다
타임紙가 ‘가히 전설적이다’고 표현한 음악가 다니엘 바렌보임 드디어 한국에 돌아온다. 1984년 파리 오케스트라와 한국을 방문한지 무려 27년 만이다. 세계적인 대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바렌보임은 잉글리시 챔버 오케스트라, 파리 오케스트라, 시카고 심포니,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파리 오케스트라 재임시절에는 파리 합창단을 창설하고 현대음악 레퍼토리를 개발하며 오케스트라의 중흥을 이끌었고, 15년간 이끌었던 시카고 심포니를 떠날 때에는 전 오케스트라 단원들에 의해 ‘종신 명예 지휘자’로 추대 받기도 하였다. 현재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음악감독 겸 종신 지휘자이며,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의 수석객원지휘자이다. 특히 음악감독이 공석이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로부터는 `라 스칼라의 마에스트로(Maestro Scaligero)`라는 호칭을 부여받기도 하였다.  지휘자 이전에 피아니스트였던 바렌보임은 이 시절에도 역시 독보적인 존재였다.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스존, 쇼팽 등 방대한 레퍼토리를 가진 천재형 피아니스트로서 피아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곡,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전곡, 바르톡 피아노 협주곡 전곡 녹음하는 업적을 이루었다. 1954년 첫 음반을 발매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Westminster, EMI, DG, Decca, Philips, SONY, BMG, Erato, Teldec 통해 발매한 음반만 수백 장에 이른다.
그는 또한 음악을 통해 세계를 변화시키는 실천하는 지식인이다. 1999년부터 에드워드 사이드와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를 창단하여 매년 전세계 순회 연주 통해 평화의 메시지를 역설한다. UN 평화대사이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민권을 동시에 갖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2. ‘평화’를 연주하는 ‘기적의 오케스트라’, 웨스트이스턴 디반의 역사적 첫 내한!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는 유태인 음악가 다니엘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 출신의 세계적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가 1999년 이집트, 이란,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 중동국가 출신의 연주자들로 구성하여 창단한 오케스트라로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동서양의 소통을 지향하며 쓴 ‘서동시집’을 따서 명칭을 지었다. 이스라엘과 아랍계, 각각의 국적을 가진 두 명의 악장이 리드하는 독특한 형태는 웨스트이스턴 디반의 이념을 반영한다.
최근 바렌보임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프로젝트가 바로 이 웨스트이스턴 디반이다. 특히, 2005년에 중동의 가장 첨예한 대립지역인 팔레스타인 라말라에서 이루어진 공연은 전세계인들의 마음에 큰 감동을 선사한 바 있다. 평화의 오케스트라, 기적의 오케스트라인 웨스트이스턴 디반이 드디어 한국에 상륙한다!

3. 대한민국 클래식 역사상 최초 4일간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이자 클래식을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베토벤. 그의 음악의 최고봉이라고 이르는 교향곡을 다니엘 바렌보임의 지휘로 4일에 걸쳐 모두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차라리 기적이라 하겠다. 한편, 세계적인 레이블인 DG는 지난 11월, 다니엘 바렌보임과 웨스트이스턴 디반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녹음한다고 발표하기도 하였다.

[프로그램]

2011년 8월 10일 (수) 8:00PM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베토벤_교향곡 제1번 C장조 Op. 21
BEETHOVEN_Symphony No. 1 in C Major Op. 21

베토벤_교향곡 제8번 F장조 Op. 93
BEETHOVEN_Symphony No. 8 in F Major Op. 93

베토벤_교향곡 제5번 C단조 Op. 67 ‘운명’
BEETHOVEN_Symphony No. 5 in C minor Op. 67

2011년 8월 11일 (목) 8:00PM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베토벤_교향곡 제4번 in Bb장조 Op. 60
BEETHOVEN_Symphony No. 4 in Bb Major Op. 60

베토벤_교향곡 제3번 Eb장조 Op. 55 ‘영웅’
BEETHOVEN_Symphony No. 3 in Eb Major Op. 55 ‘Eroica’

2011년 8월 12일 (금) 8:00PM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베토벤_교향곡 제6번 F장조 Op. 68 ‘전원’
BEETHOVEN_Symphony No. 6 in F Major Op. 68 ‘Pastorale’

베토벤_교향곡 제7번 A장조 Op. 92
BEETHOVEN_Symphony No. 7 in A Major Op. 92

2011년 8월 14일 (일) 8:00PM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베토벤_교향곡 제2번 D장조 Op. 36
BEETHOVEN_Symphony No. 2 in D Major Op. 36

베토벤_교향곡 제9번 D단조 Op. 125 ‘합창’
BEETHOVEN_Symphony No. 9 in D minor Op. 125 ‘Choral’

[출연자]

다니엘 바렌보임 | 지휘  Daniel Barenboim , Conductor



1942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난 다니엘 바렌보임은 5살 때부터 러시아계 유대인 부모 밑에서 피아노를 공부했고, 오늘날까지도 그는 그의 유일한 스승으로 아버지를 꼽는다. 1950년 8월, 만 7세에 바렌보임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공식적으로 첫 연주회를 가졌다.
1952년, 바렌보임과 그의 가족은 이스라엘로 이사했고, 2년 후 그의 부모는 바렌보임을 잘츠부르크로 데려가 마르케비치의 지휘 클래스에 참여시켰다. 그 해 여름 바렌보임은 빌헬름 푸르트뱅글러를 처음으로 만났다. 프루트뱅글러는 그의 연주를 듣고 “11살의 바렌보임은 경이롭다”고 말했고, 이 말은 바렌보임의 음악적 커리어에 있어 많은 문을 열어주었다. 1955년 바렌보임은 파리에서 나디아 불랑제와 하모니, 작곡을 공부했다.
피아니스트로서의 데뷔는 1952년 빈과 로마, 1955년 파리, 1956년 런던, 1957년 뉴욕에서 스토코프스키와 Symphony of the Air를 협연하며 이루어졌다. 이듬해 호주투어를 통해 당대 각광받는 피아니스트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1954년 처음으로 그라모폰 레코딩을 발매했고, 이어서 오토 클렘페러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존 발비롤리 경과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을, 잉글리쉬 체임버 오케스트라와는 파이니스트 겸 지휘자로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녹음하였다. 이 외에도 바렌보임은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바르톡 교향곡 전곡을 녹음하였다.
1965년부터 약 10년간 잉글리쉬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겸 피아니스트로 작업하며 유럽과 미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를 투어하였고, 1967년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지휘 데뷔 이후 유럽과 미국의 유명 오케스트라들과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1975년에서 1989년까지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을 맡았으며 이 기간 동안 루토슬라프스키, 베리오, 불레즈, 헨체, 뒤티외, 다케미쯔 등 작곡가들의 현대 음악 레퍼토리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바렌보임은 또한 실내악 뮤지션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작고한 부인이자 유명 첼리스트인 자클린 뒤 프레, 이차크 펄만, 핀커스 주커만 등과 협업하였고, 최근에는 예루살렘 국제 실내악 페스티벌에서, 그리고 베를린 슈타츠카팔레의 단원들과 실내악 활동을 벌인 바 있다.
1973년 바렌보임은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 모차르트의 <돈 지오바니>를 지휘하면서 오페라 데뷔를 했고, 1981년 바그너의 <트리스탄 & 이졸데>, <반지 사이클>, <파르지팔>, <디 마이스터징거>를 지휘하면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데뷔했다.
1991년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으로 임명되어 15년간 수많은 공연에 함께 했고, 2006년 오케스트라로부터 “종신 명예 지휘자”라는 타이틀을 부여받았다. 1992년 도이치 슈타츠오퍼 베를린의 음악 감독으로 임명되었고, 2000년 가을 슈타츠카펠레 베를린은 그를 최고 명예 지휘자로 임명하였다. 슈타츠오퍼에서의 리처드 바그너 오페라 전곡 연주 및 녹음, 베토벤과 슈만의 교향곡 전곡 연주는 국제적인 찬사를 받았고, 2003년 2월 바렌보임, 슈타츠카펠레, 그리고 슈타츠오퍼 합창단이 함께 녹음한 바그너의 탄호이저는 그래미상을 수상하였다. 2003년 3월 바렌모임은 슈타츠카펠레와 나란히 빌헬름-푸르트뱅글러-프라이스를 수상했다. 2005년 9월 바렌보임은 베를린에 음악 유치원을 설립하였고, 슈타츠카펠레 단원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바렌보임은 또한 현대 음악에 집중하여 엘리어트 카터의 유일한 오페라 `What’s Next?`의 초연을 슈타츠오퍼에서 공연하였고, 슈타츠카펠레의 레퍼토리에는 불레즈, 림, 문드리, 카터, 휠러 등 현대 작곡가들의 작품이 정기적으로 연주되고 있다.
바렌보임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객원 지휘자로 자주 무대에 오르고 있으며, 2006년에는 라 스칼라로부터 마에스트로 스칼리제로로 임명받았다.
1954년부터 웨스트민스터, EMI, 도이치 그라모폰, 데카, 필립스, 소니 클래시컬, BMG 등 수많은 레이블과 녹음하였고, 그래미상도 다수 수상하였다.
2007년 FESTTAGE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바렌보임은 피에르 불레즈와 함께 말러의 교향곡 전곡을 연주했다.
또한, 세계 2차 대전, 이스라엘 국적으로 태어난 유대인으로써 음악 외의 사회정치적 문제에 오피니언 리더로 앞장서고 있으며, 1990년대 초반에 만난 팔레스타인계 유대인 석학 故에드워드 사이드 박사(전 컬럼비아 대학 교수)와 두터운 우정을 쌓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력을 위해 대화를 이어가고 평화로운 공존을 향한 마음을 담은 프로젝트를 꾸며갔다. 이후 바렌보임은 웨스트 뱅크와 팔레스타인 비르제이트 대학에서 공연하였고, 1999년 사이드 박사와 함께 중동의 젊은 연주자들을 한데 모으는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를 창단하였다.
스페인 세비야를 거점으로 한 바렌보임-사이드 재단과 베를린의 바렌보임 재단을 통해 바렌보임은 어린 아이들을 위한 음악 교육 프로젝트를 비롯하여 웨스트 뱅크, 나사렛의 기악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2002년 바렌보임과 에드워드 사이드는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 프로젝트로 스페인의 Prince of Asturias 콘코드 상을 공동 수상하였고, 스페인의 명예 시민권을 부여 받았다. 2002년 11월 독일 대통령으로부터 Grosses Bundesverdienstkreuz, 국가 원수가 아닌 한 개인에게 내려질 수 있는 가장 큰 상을 수상, 2006년 하버드 대학으로부터 찰스 엘리엇 노턴 시문학 교수로 임명, 유수의 BBC Reith 강의 시리즈에 연주자로는 최초로 런던, 시카고, 베를린, 예루살렘에서 강의를 하는 등 수많은 공로를 인정 받았다. 또한, 예루살렘의 Wolf Foundation의 예술상, 프랑크푸르트 소재 Korn and Gerstenmann Foundation의 평화상, Hessische Friedenspreis를 수상하였고, Deutscher Kulturrat가 부여하는 가장 큰 상인 ‘Kulturgroschen,’ Ernst von Siemens Musikpreis도 수상하였다.
2007년 바렌보임은 괴테 인스티튜트로부터 괴테 메달을 수상하였고, 옥스퍼드 대학으로부터 명예 음악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프랑스 자크 시라크 대통령으로부터 레종 도너(Commandeur de la legion d’honneur), 9월 UN 반기문 장관은 바렌보임에게 UN의 평화 메신저상을 수여하였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일본 왕실로부터 프리미엄 임페리얼상을 수상하였다.
같은 해 클래식 음악가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상인 로열 필하모닉 소사이어티 금상을 수상하였다. 2008년 부에노스 아이레스로부터 명예 시민으로 임명되었다. 2009년 2월에는 국제사회의 소통 도모에 기여한 바를 인정 받아 모세 멘델스존 메달을 수상하였고, 2010년에는 런던의 로열 아카데미 오브 뮤직에서 음악 명예 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 2월 음악계에 남긴 업적으로 독일의 Kulturpreis를 수상하였고, 10월에는 뮌스터에서 Preis des Westfalischen Friedens를 수상하였다.

2007/2008 시즌 오프닝과 함께 바렌보임은 ‘마에스트로 스칼리제로’로서 밀라노 떼아뜨로 알라 스칼라와 긴밀하게 작업하기 시작했다.

다니엘 바렌보임은 그의 자서전 `A Life in Music`, 그리고 에드워드 사이드와 공동 저작한 `Parallels and Paradoxes`, 2008년에 출간한 `Everything is connected` 등 다수의 책도 발간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빠트리스 쉐로와 함께 `Dialoghi su musica e teatro. Tristano e Isotta`를 발간하였다.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  WEST EASTERN DIVAN ORCHESTRA



스페인 세비야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는 이집트, 이란,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 중동국가 출신의 청년 음악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오케스트라는 아르헨티나와 이스라엘의 2개 국적을 가지고 있는 피아니스트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에 의해 1999년에 설립되었고,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동서양의 소통을 지향하며 쓴 ‘서동 시집’의 제목을 본떠 이름이 지어졌다. 단원들은 매년 여름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정부와 한 사단재단의 지원을 받아 스페인 남부 지방 세비야에 모여 연습하며, 이스라엘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영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는 스페인 국적 연주자들도 참여하여 활동하고 있는데, 바렌보임은 오케스트라에 두 명의 악장, 각각 이스라엘과 레바논 출신을 임명하여 활동시키고 있다. 오케스트라가 여름에 모여 연습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고 있는 안달루시아 지방은 중세 시절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이슬람교도들이 모두 모여 평화롭게 살던 곳이기도 하다.
스페인 안달루시아에서 수주간의 여름학교가 끝나면, 오케스트라는 공연 투어를 시작한다. BBC 프롬스, 에딘버러, 루체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출연하고 있으며, 2002년, 오케스트라의 창단자인 사이드와 바렌보임은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 프로젝트로 프린치페 데 아스투리아스 상을 수상하였고, 재팬 아츠 협회로부터 프리미엄 임페리얼상을 수상하였다. 2006년에는 오케스트라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Paul Smaczny의 ‘Knowledge is the Beginning’는 예술 관련 최우수 다큐멘터리로 에미상을 거머쥐었다.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는 음악을 통한 소통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평화를 촉진하고 이를 통해 아랍과 이스라엘 분쟁의 평등한 해결책을 찾는데 일조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오케스트라의 창립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은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디반’ 프로젝트는…연주를 잘 하건, 못 하건, 이 오케스트라가 결코 평화를 불러오지는 않을 겁니다. ‘디반’은 다만, 무지(無知)에 대한 반발입니다.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고, 상대방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설사 나와 같지 않다 하더라도 그들을 이해할 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입니다. ‘디반’에 속해 있는 아랍계 단원들이 이스라엘 사상으로 전향하게 하려는 것도, 이스라엘 단원들에게 아랍인들의 생각을 강요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양측이 최후의 선택으로 창과 칼에 의존하지 않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기를 원할 뿐입니다 - (안타깝게도 저와 뜻을 함께 했던 에드워드 사이드가 몇 년 전 세상을 떠나 이젠 혼자 꾸려 나가야 하지만 말이죠…)”
오케스트라의 한 젊은 단원도 가디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오케스트라를 소개했다:
“바렌보임은 늘 이 프로젝트가 정치적이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이 프로젝트는 양측의 정치적 사상을 모두 드러내는 프로젝트라는 바로 그 점이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비롯한 단원들에게보다도, 다른 사람들에게 [분쟁 국가 출신의] 사람들이 한군데 모여 앉아 연주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지요. 이 오케스트라는 사람을 상대하는 법을 세상으로 하여금 관찰하게 해주는 실험의 장과도 같습니다.”
오케스트라는 교향곡 외에도 오페라, 실내악 연주를 펼치고 있으며, 베를린 필하모닉 홀, 밀라노의 떼아뜨로 알라 스칼라, 빈의 무지크페어라인, 뉴욕의 카네기홀, 모스크바의 차이코프스키 컨서버토리, 이스탄불의 성 에이레네 박물관, 파리의 살 플레옐, 마드리드 플라사 마요르,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떼아뜨로 콜론, 뉴욕 UN 본부의 General Assembly Hall에서 전 UN 사무총장 코피 아난을 기리는 공연을 선보였다.
오케스트라는 워너 클래식, EuroArts 레이블로 CD/DVD를 다수 발매하였고, 이 중에는 제네바 빅토리아 홀에서 녹음한 공연(2004), 베를린 필하모닉 홀에서 라이브 레코딩한 베토벤 교향곡 9번(2006), 라말라 Cultural Palace에서의 연주(2005)가 포함되어 있다. 다큐멘터리 “Knowledge is the Beginning”은 국제 에미상(2006)을 수상하였다.
2011년 오케스트라는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로 2회의 투어를 가진다. 5월에는 중동과 유럽에서, 8월에는 아시아 최초 방문으로 베이징, 상해, 서울에서 공연하고 유럽으로 돌아와 루체른, 짤츠부르크 등에서 연주한다. 베를린 발트뷔네 공연 및 꼴로뉴 필하모닉에서의 베토벤 전곡 레코딩도 예정되어 있다.

괴테 - West-Eastern Divan= 서동시집(西東詩集)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칠순을 맞아 펴낸 ‘서동시집(西東詩集)’ (영문: West-Eastern Divan)은 괴테가 그린 동서양간의 소통 방식을 묘사한다. 페르시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괴테의 이야기는 신의 세계와 자연을 형상화하여 동방 사상을 묘사하고 있다.

[PREVIEW]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음악의 휴머니스트들,
다니엘 바렌보임과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
       
유정우(의사, 음악 칼럼니스트)

괴테가 1819년, 칠순 가까운 나이에 오리엔트 세계에 대한 깊은 관심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서동시집(West-Eastern Divan: 서동이란 동양의 서쪽지방, 즉 중동을 가리킨다.)>은 14세기 페르시아의 시인 하피스의 시세계에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지만 그것은 단순히 노시인의 이국취향에 의한 결과물만은 아니었다. 19세기 유럽 사회의 오리엔트 세계에 대한 관심은 그것이 과거 터키의 침략에 따른 공포의 기억에 기인한 과장된 피해의식의 발로이거나 새로운 식민지의 개척에 따른 제국주의적 우월의식이거나 어느 쪽이든 유럽중심적 시각이었던 반면에 식민 정책과 같은 정치, 경제적 관심에서 멀었던 괴테의 오리엔트 연구는 좀더 자유로운 시각을 보이고 있다. 괴테는 동, 서양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을 극복하고 이국문화에 대한 호의적 태도를 보였다. 1935년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카이로에서 성장한 후 미국에서 교육 받고 콜럼비아대 교수로 활동한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 1935~2003)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영문학자로 20세기 가장 뛰어난 문명 비평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사이드는 그의 대표적 저서인 <오리엔탈리즘(1981)>에서 괴테의 서동시집을 가리켜 ‘유럽인이 오리엔트를 이해하고 동등한 입장에서 수용하려 노력한 첫 시도’라고 평가하고 있다.

신동 피아니스트에서 어느 새 거장 지휘자로 자리매김한 다니엘 바렌보임은 지난 1990년대 이후부터는 이스라엘의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거침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바렌보임은 1967년 2차 중동 전쟁 당시에는 모든 스케줄을 취소하고 조국으로 달려가 연주를 하기도 했던 애국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과거에는 약자로서 핍박 받았던 이스라엘이 이제는 강자의 입장이 되어 피지배 민족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탄압하는 지극히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면서 조국을 서슴없이 비판하기에 이른다. 이 시기 바렌보임은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만남을 가지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에드워드 사이드와의 만남이었다.

바렌보임과 사이드는 1992년 처음 만나 바로 친구가 될 정도로 의기 투합하였으며 이들의 우정은 2003년 사이드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1998년 두 사람은 늘 생각하던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한 문화 운동의 첫 단추로 “웨스트이스턴 디반 프로젝트”를 구상하였고, 그 첫 번째 워크샵이 1999년 독일 바이마르에서 개최되었다. 이 때 탄생된 것이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이집트, 스페인 등에서 선발된 젊은 음악가들로 구성된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West-Eastern Divan Orchestra)”이다. 사이드가 칭송해 마지 않았던 괴테의 “서동 시집”에서 이름을 딴 오케스트라가 탄생한 것이다.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는 매년 여름, 유럽과 미국에서 순회 연주를 하며 높은 예술적 평가를 받게 된다. 2005년 8월 21일, 그들은 드디어 자신들의 커리어에서 가장 의미 있는 연주회를 열게 된다. 바로 아랍과 이스라엘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화약고, 요르단강 서안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의 중심도시인 라말라에서 연주를 하게 된 것이다. 사이드의 사후 그의 유지를 받들어 바렌보임이 실현시킨 이 콘서트는 연주가들의 안전조차 장담하지 못할 정도로 위험한 도전이었지만 바렌보임의 의지와 젊은 예술가들의 용기로 결국 이루어질 수 있었다. 바렌보임은 이 연주회를 앞두고 단원들에게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지역인만큼 이 연주회 참가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라말라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사람은 오지 않아도 좋다.”라고 했으나 단원들은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라말라로 들어가 연주회에 참여했다.

필자와 친분이 잇는 연주가 중 마침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있어 그 때의 심정을 직접 들어 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이집트 출신의 오보이스트 모하메드 살레(Mohamed Saleh)다. 2006년 봄 베를린에서 한 콘서트가 끝난 뒤 필자는 모하메드를 만나게 되었다. 근 1년 만의 재회였다. 라말라 콘서트의 DVD를 본 감상을 말하며 “라말라로 들어가는 일에는 죽음을 각오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아. 솔직히 두렵지는 않았어?”라는 필자의 우문에 모하메드는 “인간은 언젠가는 죽게 돼. 다만 죽음에는 좋은 죽음과 나쁜 죽음이 있다고 생각해. 라말라에서 연주를 하다가 죽게 되더라도 그것은 분명 좋은 죽음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지.”라는 가슴 뭉클한 현답으로 가르침을 주었다.

라말라 콘서트에서 본 프로그램이 끝나고 바렌보임은 청중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 오케스트라를 가리켜 ‘평화를 위한 오케스트라’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한 마디만 하죠. 우리의 음악이 지금 당장 이 땅에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것은 나도 알고 여러분도 압니다. 오늘 우리의 연주가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서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노력, 그것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려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 바렌보임은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중 9번째 곡인 “님로드”를 앙코르로 들려준다. 님로드라는 별명을 가진 엘가의 친구의 품성을 묘사한 곡이기에 한 없이 서정적인 곡이긴 하지만, 고대 바빌론의 왕 님로드는 바로 바벨탑을 건설한 것으로 알려지는 인물이기도 하다. 인류가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지게 됨으로써 ‘소통’의 문제가 생기게 된 근원의 상징과도 같은 이름이기도 하기에 곡이 끝난 뒤 듣는 이의 가슴에 남겨지는 울림은 자못 남다르다.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단원들 역시 각자의 조국에 대한 애정이 있고 서로간에 의견이 맞지 않는 일도 당연히 있다. 심지어 단원들 중에는 그들의 아버지들이 실제로 중동 전쟁 당시 서로 적군으로서 총부리를 겨누었던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기에 앞서 먼저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인다. 서로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말에 귀를 기울이고, 결국에는 서로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애호가로서 필자는 “과연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어떤 통찰을 줄 수 있나?”라고 가끔씩 스스로에게 반문해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필자에게 하나의 답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존재이다. 라말라 콘서트는 예술이 인류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를 통해 동시대에서 어떤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귀한 증거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