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클래식노트

돌아온 정경화 … 내달 서울공연 뒤 세계투어

마리안나 2011. 11. 25. 11:17

평화

 

지독한 완벽주의 그거 다 버렸다

돌아온 정경화 … 내달 서울공연 뒤 세계투어

 

정경화씨는 연습벌레다. 40년이 넘게 흐르니 왼손의 손금마저 달라졌다. 바이올린 지판(指板)을 짚느라

손금이 한쪽으로 몰렸다고 했다. 또한 그는 완벽주의다. 1967년 미국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1등이 발표

되는 순간 ‘꿈 풍선’이 폭하고 터지듯 중압감이 밀려왔고, 찬사를 받았던 데뷔 콘서트후 두 번째 공연이

가장 힘들었다 회상할 정도다. 그가 다음 달 무대로 돌아온다. 손가락 부상, 가족의 죽음 이후 그 자신을

멀리서, 차분하게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89년 11월에 굉장히 큰 차 사고가 났다. 약한 기억상실증이 올 정도였다. 어떤 기억은 아예 잊어버렸다. 그래도 부모님이나 매니저 아무한테도 말을 안 했다. 녹음을 취소 했더니 주위 사람이 다 화가 났는데 그래도 차 사고란 말을 안 했다. 사람들이 병신 됐다고 그럴까 봐. 그런데 지금 봐라. 다 쓱쓱 말하지 않나?”

 ‘동양의 마녀’로 불렸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3)씨가 환한 웃음을 지었다. 19일 오전 서울 구기동의 자택에서였다.

 정씨는 1967년 미국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그의 화두는 줄곧 ‘완벽’이었다. 불완전한 모습은 가족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 사람을 실망시키기도 싫었지만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스스로가 실망하는 거였다. 음표 하나라도 잘못 나가면 내 경력은 끝이라 생각했다.”

 40년 가까운 시간이었다. 안달복달하며 음표를 하나하나 매만지고 살았다. 2005년 서울 공연에서 부상으로 무대를 떠나기 전까지였다. 그는 왼손 부상을 이유로 공연을 취소했고 모든 활동을 접었다. 2년 후 줄리아드 음대에서 학생을 가르친다는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70년대 음반에서 들려줬던 불 같고 서릿발 같던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그런 그가 돌아온다. 다음 달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독주회가 ‘제2 시작’이다. 내년엔 지방 도시와 중국 3개 도시를 순회한다. 2013년엔 일본 4개 도시를 거쳐 유럽으로 나간다. 70년대 정경화에 열광했던 런던 무대를 시작으로 독일, 그리고 미국 대륙까지 돈다.


 - 지난해 오케스트라와 협주곡 한 곡을 협연하긴 했지만, 이번 세계 투어 계획은 진정한 복귀 선언으로 보인다. 어떻게 결심하게 됐나.

 “몇 번이고 연주 계획을 잡았다 포기했다. 순전히 몸 때문이었다. 손 다치고 3개월 후엔 어깨를 또 다쳤다. 지금도 몸이 따라오지 않는다. 열 시간씩 연습하고 싶은데 많이 해야 두 세 시간이다. 하지만 50년 동안 바이올린 하면서 음악이 내 몸에 스며들어있다. 이거, 청중한테 그래도 들려줘야지.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다. 완벽주의? 그거 버리고 난 완전히 바뀌었다.”

 - 바뀌었다는 건.

 “말도 못하는 압박감이 있었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 잘 한다고 해도 나는 만족하지 못했다. 하루는 아버지가 ‘네가 못하는 거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냐?’고 묻길래 ‘다른 사람이 무슨 상관이에요’라고 대꾸했다. 그런데 지난 5년, 지옥 같이 더 내려갈 데가 없을 정도로 내려간 후 다 비웠다.”

 정씨는 2005년부터 5년을 이렇게 기억했다. 2007년에 일곱 남매의 첫째인 정명소씨가 작고했다. 70년 음반사 데카에서 기적 같은 데뷔 앨범을 만들어줬던 프로듀서 크리스토퍼 레이번도 같은 해 사망했다. 또 올 5월엔 어머니 이원숙 여사도 세상을 떠났다.

 “매일 고민을 나누던 이가 큰 언니다. 병을 발견한 지 3주 만에 하나님이 데려갔다. 이해가 안됐다. 사람을 아예 안 만났다. 형제들하고도 얘기를 안 했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줄까, 그 소명을 찾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끊임없이 기도하던 중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인생이 이렇구나. 완벽한 건 없구나.’

 “내가 끝까지 걸어갔을 때 나오는 목소리가 어떨까 궁금하다. 이젠 완벽한 걸 보여주려는 게 아니다. 예술은 완벽할 수가 없다. 나는 죽음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

 베일 듯 날카롭던 그가 넉넉해져 있었다. 집 안에선 슈만의 아내와 브람스 이름을 딴 강아지 두 마리, 클라라와 요하네스가 뛰어 놀고 있었다. “지금도 생각만큼 연습하지 못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우울해진다. 하지만 내 형제들, 두 아들, 그리고 강아지들…. 이렇게 껴안고 사랑하면서 이긴다.” 정씨는 이제 완벽 대신 ‘사랑’을 안고 무대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