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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 / 니벨룽겐의 반지 - 2

마리안나 2012. 12. 20. 23:54
바그너 / 니벨룽겐의 반지 - 2

제뉴어리

(2) ‘발퀴레

인간은 자라면서 인식이 발달하고 욕심이 커지고 행복의 폭은 줄어든다. 아무리 아름다운 장관을 바라보아도 아무리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어도 도대체 시큰둥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가끔은 새처럼 자신의 퇴화된 날개를 움직여 볼 필요가 있다. 개별적인 것, 한계적인 것, 좁은 시야로 땅만 바라보며 살 것이 아니라 광활한 우주로 향한 날개짓을 한번 퍼득여 보아야한다.

바그너라는 인물은 매우 독특하게도 시공의 한계에 갇힌 인간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초인적인 작품활동을 통하여 높이 날았던, 음악사에서도 보기드문 인물이었다. 그의 작품은 너무도 광대하여 조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지만 꼭 한번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될 작품이 바로 '니벨룽겐의 반지'다.

물론 바그너는 이스라엘에서는 공연이 금지될 만큼 반 유대주의에 앞장 선 인물이었다. 바그너는 생존당시 많은 유대인들과 교류했지만 금전적으로 이용했을 뿐 배신을 서슴치 않았다. 자신의 예술을 위해선 얼마든지 가면을 쓸 수 있는 위선자가 바그너이기도했다. 바그너가 당대 저명한 지휘자 뵐로(바그너의 친구)를 배신하고 그의 아내 코지마를 가로 챈 사건은 너무도 유명하다. 오로지 예술밖에 몰랐던 바그너는 예술을 제외한, 인격자로서는 너무도 다른 인간이었다.

바그너는 여인의 순수한 사랑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찬양한 바 있는데,‘니벨룽겐의 반지는 이러한 애정결핍증 환자였던 바그너의 콤플렉스가 역으로 드러난, 여성숭배 의식을 그리고 있다.

링 사이클은 신화를 통한 사랑을 강조한 작품인 만큼 음악만큼은 비할 바 없이 아름답다. 특히 2발퀴레야말로 링 사이클전 작품을 통해 가장 아름다운 로맨티즘이 발휘된 작품이라 할 것이다. 그 중 발퀴레의 기행과 함께 널리알려진 매직 화이어는 발퀴레(브린힐데)가 영원히 타오르는 불 속에 갇혀 깊은 수면으로 빠져드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으로, 참으로 음악의 마술적인 요소들이 절묘하게 묘사되어 있다.

무대를 붉게 태우면서 울려퍼지는 매직 화이어를 통하여 바그너는 불의 그 영원성과 음악의 위용을 찬양한다.

그의 음악은 한 마디로 초극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그것은 음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장렬한 종교적 희생의 한 장면같은 것이었다. 인간은 얼마나 극복될 수 있는 존재인가, 인간이란 얼마나 초극될 수 있는 존재인가를, 바그너는 적어도 음악의 힘을 통해 그 승화적 위대함을 보여준다. 극적인 순간에 터지는 그 굵직한 선율은 인간의 가슴에 감동으로 멍울지게 하며 그 아름다운 순간에 망연자실케한다.

인간은 어차피 연소될 수 밖에 없는 불과 같은 것, 영혼만이 타오르는 불꽃이다. 바그너가 혼신의 힘을 다해 주장하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불멸하는 영혼의 긍정이다.

2발퀴레는 여주인공 발퀴레(주신 보탄의 딸- 천마를 타고 부상자를 나르 여신들)를 그린 작품으로 3막이 가장 드라마틱하다.

보탄은 거인 파프너를 죽이고 반지를 되찾아야할 지그문트(보탄의 아들)가 지상에서 누이와 사랑에 빠진 것에 분노, 발퀴레들을 출격시킨다. 그러나 지그문트를 죽이려던 발퀴레 중의 한 명 브린힐데는 두 사람의 애절한 사랑을 동정, 보탄의 명령을 거역하고 지클린네(지그문트의 누이)를 살려준다. 이에 분노한 보탄은 발퀴레를 벌주기 위해 천둥과 번개를 타고 지상에 내려온다.

보탄은 브린힐데가 더 이상 발퀴레가 아니며 깊은 잠에 빠져있다가 누구든 그녀를 발견한 첫 사람의 아내가 될 것이라며 저주한다. 이 때 브린힐데는 오직 가장 용맹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 만이 자신을 구할 수 있도록 주위에 영원히 식지 않는 불을 둘러 줄 것을 간청한다. 이에 보탄은 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고, 작별의 키스를 하는 순간 브린힐데는 더 이상 발퀴레가 아닌 평범한 여인으로 영원히 잠들게 된다.

이때 바그너는 매직 화이어라는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선율로 극적인 장면을 수놓게 되는데, 보탄은 지팡이로 땅을 세 번 쳐 영원한 불벽을 세우고 누구든 창을 두려워하는 자는 이 불을 건너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간다.

< 3부 지그프리드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