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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Dvorak / Concerto for Cello and Orchestra in B minor,Op.104

마리안나 2008. 2. 26. 15:52
      
                Anton Dvorak (1841∼1904)
            Concerto for Cello and Orchestra 
                   in B minor,Op.104
        드보르작 - 첼로 협주곡 나 단조 작품 104
      

      
      [제1악장] : Allegro
      곡은 흙의 향기가 높은 이국적인 제 1주제에서 
      목가풍의 제2주제로 발전한다. 
      첼로가 밝고 활달한 가락으로 주제를 연주 시작하다
      소나타 형식으로 관현악의 긴 제시부로 시작된다. 
      그러나 일반적 이중 제시 대신 첼로는 
      새로운 주제를 가져온다. 
      첼로의 등장은 거의 즉흥적일 만큼 서사적 레치타티보로, 
      이 부분을 카잘스는 '영웅의 출현'이라 했는데 
      원조인 나단조 대신 나장조, 엄밀히 믹솔리디안 선법을
      사용하여 장엄함을 갖게 한다. 
      주제는 이를 바탕으로 기교적으로 발전되며 
      표현적이고, 감정을 노정하는 종속 주제로 들어간다. 
      발전부는 주로 1주제를 바탕으로 전개되는데, 때로는 
      폴리포니적이며 표현적인 새로운 대선율들이 
      첼로를 동반하기도 한다. 
      재현부의 경우 종속부만을 가져오는데, 
      1주제를 암시하는 확대된 코디를 가져옴으로써 
      이 부분을 보강한다.
      
      [제2악장] : Adagio ma non troppo 드보르작 특유의 향수가 여기에서 모습을 나타낸다. 열정과 꿈과 조용한 회상이 떠오른다. 3부분 형식으로 목관 3중주가 민요풍의 종교적이면서도 애수에 찬 주제를 연주한 후 첼로가 그대로 받아 이중 제시를 하면서 점차 애절하게 발전된다. 그러다 갑자기 1악장처럼 드라마틱해지며 영웅의 깊은 슬픔을 표현하는 듯이 비창적 2주제가 나온다. 3부는 호른이 아름다운 화음으로 1주제를 재현하고 이를 첼로가 카덴차풍으로 받으면서 시작되는데, 비극적 분위기는 가라앉고 위엄을 갖추면서도 연민의 정을 보이며 조용히 사라진다.
      [제3악장] : Allegro moderato 거칠고 싱싱한 감정과 정열의 솟구침. 보히미아의 민요와 무곡 그리고 미국 흑인의 가락을 교묘하게 사용하여 강렬한 음의 무늬를 그린다. 콘트라베이스부터 시작되는 무거운 행진곡은 금관, 목관, 현이 추가되면서 축제 분위기로 급전한다. 론도 형식의 3악장은 모든 고난과 고뇌를 이겨낸 승리의 향연같이 보헤미아 춤곡들이 번갈아 나오면 온갖 기교와 함께 즐겁고 환희에 찬 노래를 부른다. 끝으로 가면서 안단테로 변하며 처음에는 2악장을 그리고 코다에 가서는 1악장을 회상한다. 그리고 카잘스가 '영웅의 죽음'이라고 한 부분에 도달한다. 영웅은 숨을 거두고 팀파니의 트레몰로를 시작으로 투티는 급격하게 포르티시시모가 되면서 금관 소리는 천상이 열림을 알리며 대서사시는 막을 내린다.
      Dvorak, Antonin (1841.9.8~1904.5.1) 체코 프라하 교외 넬라호제베스 출생. 보헤미아에서 태어나 보헤미아를 사랑했고, 보헤미아의 음악과 시를 세계 사람들에게 소개했던 드보르작은, 교향곡 "신세계로부터" 와 현악 4중주곡 "아메리카", 그리고 이 "첼로 협주곡" 을 완성한 다음에 고향 보헤미아로 돌아 갔는데, 이곡은 1894년 말부터 작곡에 착수하여 이듬해인 1895년 초에 완성한 것이다. 이 협주곡은, 하이든, 슈만, 생상스의 같은 첼로 협주곡과 함께 뛰어난 작품의 하나로 꼽히며, 더구나 그 규모가 큰 점과 곡상의 독창적인 점에서는 다른 첼로 협주곡이 도저히 따르지 못 하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국 체제중에 작곡된 만큼"신세계로부터" 와 마찬가지로, 흑인 영가와 미국의 민족음악과 아메리카 인디언 민요가 도입되었고, 거기에 보헤미아의 민족음악과 흙의 향기가 안배 되어져서 신비하게 그것이 융합되어 있다. 그는 민요의 정신적 영향을 중히 여기면서 썼다고 말한 바 있는데, 그러한 것들은 브람스와 같은 구성으로 쌓아 올리고 있다. 보헤미아 (Bohemia) 체코의 서부 지역. 라베(엘베)강과 그 지류인 블타바(몰다우)강의 유역. 면적은 5만 2052㎢이다. 체코를 동서로 나누어 동부를 체코명으로 모라바(모라비아)라부르고, 서부를 체히(Cechy)라 부르는데, 이 체히를 라틴어로 보헤미아, 영어로 보헤미아, 독일어로 뵈멘(Bhmen)이라 한다. 체코명의 체히는 체코를 의미할 때와 보헤미아를 의미할 때가 있다. 보헤미아는 기원 전에 이 지방에서 산 켈트인 부족 보이(Boii)에서 비롯되는 역사적인 명칭이다. 보헤미아는 사방이 산맥으로 둘러싸인 마름모꼴의 커다란 분지로, 라베(엘베)강과 그 지류인 블타바(몰다우)강의 유역에 전개된 지역이다. 체코를 형성하는 1개 도시(프라하)와 7개주(州) 중에서 이호모라프스키주와 세베로모라프스키주를 제외한 1개 도시, 5개주로 이루어진다. 기름진 농지와 풍부한 광산자원이 있고, 수도 프라하를 비롯하여 많은 공업도시가 발달해 있으며, 체코의 정치, 경제, 산업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다. 이 지방에서 처음으로 살았던 켈트계 보이족은 기원 전후에 남쪽으로 떠나고, 그 뒤를 이어 게르만계의 마르코마니족 등이 침입해왔으며, 6세기부터는 슬라브계의 체코인(人)이 침입하여 이곳을 점거하였다. 그후 9세기에 체코 귀족인 프르셰미슬가(家)가 이곳을 통일하여 군림하였으며, 이때 이후를 체코 국민국가시대 라고 한다. 이 왕가는 895년에 독일과 봉건신종(封建臣從) 관계를 맺어 독일왕국의 공(公)이 되었다가, 1198년 王號를 허가받았으며, 그 무렵부터 독일계 농민, 상인의 이주가 활발해지고 독일색이 짙어졌다. 1306년에 프르셰미슬가의 대가 끊어지자 국민국가시대도 막을 내렸으며, 그후부터는 독일계 룩셈부르크가(家)의 지배를 받았다. 15세기의 종교분쟁인 후스 전쟁은 독일의 지배에 저항하는 체코의 국민주의운동이었다. 1526년에 이르러 보헤미아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家)의 손에 넘어갔으며, 체코의 신교 귀족(파니)이 이에 대항하여 30년전쟁을 일으켰으나 신교 귀족의 패배로 합스부르크가의 지배가 강화되었다. 그후 1627년에는 독립왕국의 지위를 잃고 오스트리아의 속국이 되었으며, 20세기까지 합스부르크가가 세습적으로 보헤미아왕의 지위를 차지하였다. 19세기에 이르러 계몽주의, 낭만주의 등의 영향을 받아 체코 국민주의가 불타올랐으며,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가 탄생하였고,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면서 체코에 속하게 된다.
출처 : Dvorak / Concerto for Cello and Orchestra in B minor,Op.104
글쓴이 : 제뉴어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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