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현: 카라얀(Karajan·1908~1989)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음반사들이 카라얀의 녹음을 쏟아내는군요.
정준호: EMI는 카라얀의 음반 160장(50만원)을 관현악·오페라·성악으로 나눠 출시했고, 일본에서는 도이치그라모폰(DG)에서 녹음했던 전집(240장)을 무려 30만엔(310만원)짜리로 내놨죠.
김: 카라얀이 없었다면 지금의 클래식 음악계는 어땠을까요.
정: 카라얀은 콤팩트 디스크(CD)의 탄생부터 적극적으로 관여했습니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도 지금 같은 다각형이 아니라 구두 상자 모양이었을지 모릅니다. 다각형 모양의 입체적이고 혁신적인 음악당 설계를 강력하게 지지한 사람이었죠.
김: 카라얀의 고향은 어디였나요?
정: 모차르트가 태어났던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였죠. 그가 등장했던 때는 구세대 지휘자를 대신해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정통 레퍼토리를 구현해줄 적자가 필요했던 시기입니다.
김: 바그너 음악에 심취됐던 히틀러가 청년 카라얀이 지휘하는 바그너 오페라를 듣다가 오류를 지적했다죠?
정: 카라얀은 원하는 것을 얻으려 언제든 타협하거나 양보할 준비가 돼 있었던 야심가죠. 클로드 를루슈 감독의 영화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를 본 적이 있나요.
김: '볼레로'의 라벨이 주인공인가요.
정: 이 영화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치열한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중 카라얀을 빗댄 인물이 나옵니다. 영화 속에서 미국 연주회는 매진됐지만, 정작 공연 당일엔 청중이 아무도 나오지 않았어요. 카라얀의 나치 전력에 항의하는 미국 유대인들이 표를 몽땅 사버린 뒤, 공연을 보이콧한 거죠. 그날 객석엔 기자 1명만 앉아있었습니다.
김: 저 같은 기자였군요.
정: 그 기자 혼자서 브람스 교향곡을 들었으니 호강한 셈이죠.
김: 카라얀은 왜 눈 감고 지휘한 거예요?
정: 아무리 복잡한 오케스트라 악보라도 외워서 지휘할 수 있다는 자신감 아니었을까요? 단원들에게 '나를 믿고 따르라'는 강력한 주문일 수도 있죠.
김: 영상으로도 카라얀을 접할 수 있죠?
정: 그는 영화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오페라 '나비 부인'과 '카르멘'을 영화로 만들 때는 음악은 물론 세트와 영상까지 직접 진두에서 총지휘했습니다. 사실상 뮤직 비디오의 총감독 역할도 한 거지요.
김: 카라얀 그늘이 팔십 리를 가는군요.
정: 카라얀은 자기 이미지 메이킹에 신경을 쓴 선구자이기도 했죠. 정면에서 촬영한 카라얀 사진이 별로 없는 걸 아세요?
김: 대부분 측면 사진이죠.
정: 요즘 식으로 말하면 카라얀은 '얼짱 각도'에서 눈감고 지휘하는 모습을 의식적으로 사진에 담았어요.
김: 화보집을 보면 카라얀이 평소 오토바이와 스포츠카, 개인 항공기와 요트를 즐겼던 사진들이 즐비합니다. 그는 취미도 귀족주의자였나요.
정: 자신이 페라리를 몰면 비서는 롤스로이스를 몰고 따라왔다는 일화도 있죠.
김: 음반 시장의 퇴조와 함께 카라얀의 시대는 흘러간 걸까요. 아니면 우리가 여전히 카라얀의 그늘 속에 살고 있는 걸까요.
정: 음반이 호황을 누렸던 시대의 영광을 고스란히 누렸지만, 거꾸로 음반 불황의 원인 제공자일 수도 있겠죠.
김: 야심만만했던 카라얀에게도 라이벌이 있었을까요.
정: 인기나 레퍼토리의 범위에서 흔히 미국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Bernstein)을 라이벌로 듭니다.
김: 카라얀과 번스타인이 같은 날 서울에서 같은 곡을 지휘한다면, 어떤 연주회에 가실 건가요.
정: 만약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이라면 카라얀의 카리스마를 차마 거부할 수는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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