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사이에서 한 병 술을
대작할 사람도 없이 혼자 마시노라.
술잔을 들어 밝은 달 맞으니
그림자와 함께 셋이 되었도다.
달은 마실 줄 모르거니와
그림자 역시 내 몸짓을 따를 뿐
달과 그림자와 짝이 되어
이 한 몸 즐겨 보리라.
내가 노래하면 달도 하마 머뭇거리고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찬란히 흩어지네
깨어서는 이렇게 서로 즐겨도 보건만
취한 뒤엔 각자 흩어져 가야 하네.
세속을 떠난 인연을 맺어
아득한 은하 저편에 가 만나고저.
하늘이 만약 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늘에 주성은 없으리
땅이 만약 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땅엔 응당 주천이 없으리라
천지가 이미 술을 사랑하였으니
술을 사랑해도 하늘에 부끄러울 게 없도다
내가 들으니 청주(淸酒)는 성인에 비겼고
탁주(濁酒)는 현인에 비겼다 하더라
현과 성을 이미 마셨으니
하필 신선을 구하리요
석 잔은 대도(大道)로 통하고
한 말 술은 자연과 합치되는도다
오직 술 가운데서 벗을 찾을지니
술 깬 자에게는 이를 전하지 말라.
대지의 노래를 작곡할 무렵 말러는 죽음의 문제에 대해 특히 만감했는데,그것은 9번 교향곡과 관련된 징크스 때문이었다고 한다.
작곡가들에게 있어 아홉 번째 교향곡은 일종의 종착역과 같은 것이었다.
베토벤도, 슈베르트도,부르크너도 제9번 교향곡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래서 말러는 성악이 붙은 교향곡 스타일의 작품을 작곡하고
여기에 제9번 교향곡 대신 <대지의 노래>라는 제목을 붙였던 것이다.
<대지의 노래>에는 이렇게 나약한 인간 말러의 현세에 대한 허무와 집착과 체념이 깃들어 있다.
'대지의 노래' 여섯곡 중 1곡,4곡,5곡이 이백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며,
술의 시는 1곡과 5곡이다.
제1곡 <현세의 고통에 대한 술의 노래> - 원시는 이백의 '비가행'(悲歌行)
금잔에 이미 술이 부어져 있지만
술을 마시기에 앞서 나 그대에게 노래를 불러 주리라.
근심의 노래가 웃으면서 영혼 속에 울린다.
슬픔이 다가오면 영혼의 정원은 황폐해지고
기쁨의 노래는 시들어 사라진다.
삶도 어둡고, 죽음도 어둡다.
이 집의 주인이여!
그대의 곳간에 금주가 가득하구나.
여기, 이류트를 내 것으로 삼아
그것을 타며 술잔을 비우리라.
둘이 정말 잘 어울리는구나.
제때에 가득 채워진 술잔은
지상의 어느 왕국보다 귀하다.
삶도 어둡고, 죽음도 어둡다.
하늘은 영원히 푸르고,
대지 또한 게속해서 봄이면 꽃을 피우리
그러나 그대 인간이여.
그대는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
썩어가는 지상의 하찮은 것들을
고작 백년도 향유할 수 없는 것을.
저 아래를 보라!
무덤을 비추는 달빛 속에
요괴 같은 형상이 웅크리고 앉아 있구나.
그것은 원숭이! 들어보라. 그울음소리가
삶의 달콤한 향기를 뚫고 지나가는 것을!
자,이제 술을 들어라!
벗이여. 때가 왔도다.
이제 황금의 술잔을 깨끗이 비우라.
삶도 어둡고, 죽음도 어둡다.
5곡 <봄에 술 취한 자> -이백 <봄날에 취해서 일어나 생각을 말하다>
인생이 한낱 꿈이라면
무얼 그리 애쓰고 초조해 할 것인가.
나는 종일 더 이상 마시지 못할 때까지 술을 마신다.
내 목구멍과 영혼이 충만해
더 이상 마실 수 없을 때
나는 문으로 비틀거리고 걸어가
단 잠에 빠진다.
깨어 있을 때 들리는 저 소리는 무엇인고. 들어라!
새 한 마리가 나무에서 노래하고 있구나
나는 꿈만 같아서 물었다. 봄이 왔냐고.
'예, 왔습니다. 밤새 걸려서 왔지요'
새가 대답하는 소리 믿을 수 없구나.
새는 노래하며 웃는다.
나는 다시 잔을 채우고,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마신다.
그리고 어두운 창공에 달이 환하게 비칠 때까지 노래한다.
그러다 더 이상 노래할 수 없게 되면
다시 잠으로 돌아가리.
그러면 봄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나를 취하게 내버려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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