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 / 金春順
뜨개질 金春順
오전의 보풀들을 뽑아 뜨개질을 한다 봄볕이라 해도 좋고 아니라 해도 좋고 코바늘 끝에 가끔씩 걸리는 기침 노인이라 해도 좋고 아니라 해도 좋고
아침에 시작된 뜨개질은 정오의 햇볕으로 넓어지고 문지방을 넘은 여러 겹 햇살의 둘레는 시계방향만큼 야위어간다. 안뜨기와 겉뜨기로 짠 한 뼘의 消日 붉은색 자투리 뜨개실은 모아 겹겹, 여러 꽃송이를 떠 놓고 한 올 한 올 늘였다 줄였다 키를 키운 푸른색은 어느새 한그루 나무가 되었다
끄덕끄덕 졸다 빠트린 바늘 코 몇 개 어느 계절에 잃어버린 꽃과 꽃말을 찾아 고샅길을 거닐고 있다 바람에 흔들리던 붉은 칸나가 저 혼자 붉던 신작로 가물거리는 행려의 언어가 코바늘에 걸려 마른 날의 더께를 벗겨내고 있다
오늘 다 뜨지 않아도 좋은 하루 흔적이라 해도 좋고 추억이라 해도 좋고 은색의 실이 가득한 머리 낡은 보플 들만 자꾸 일어나는 오후라 해도 좋고 아니라 해도 좋고.
< 2011년 우리詩 7월호 게재 >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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