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동 규
1
좀 늦었을 뿐이다,좀 늦었을 뿐이다, 나의 뼈는 제멋대로
걸어가고. 차거운 얼굴을 들면 나무들은 이미 그들의
폭을 모두 지워버려,폭이 지워지면 앙상히 드러나는 날들,
내 그를 모를 리 없건만, 오 모를 리 없건만, 외로운 때면
언제나 그들에게 다가간다.
이제 누가 나의 자리에 온다고 하면, 보리라, 각각으로
떨어지는 해를, 어둑한 나무들을, 그 앞에 그대를 향해 두
팔 벌린 사내를, 그의 눈에 잠잠히 드는 地平을, 그리고
그의 웃음을, 그대는 보리라.
2
어두운 겨울날 얼음은
그 얼음장의 두께만큼 나를 사랑하고
그 사랑은 오랫동안 나를 버려 두었다
때로 누웠다가 일어나
겨울저녁 하얀 입김을 날리며 문을 열 때면
갑자기 내 입김 속에 들어오는 조그만 얼굴
얼굴을 가리는 조그만 두 손
나는 알겠다,언제부터인가
육체의 쓴 맛이 머리칼을 곱게 빗고 흙 내음을 맡으며
얼마나 오랜 나날을 닫힌 문 속에 있었는가를
나는 여기 있다,미친 듯이 혼자 서서 웃으며
내 여기 있다, 네 조그만 손 등에 두 눈을 대고
네 뒤에 내리는 雪景에
외로울 만치 두근대는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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