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애린

겨울날 斷章 (견딜수 없이 가벼운 존재들) <황동규>

마리안나 2008. 1. 1. 22:03

                                                    황   동   규

 

1

 

좀 늦었을 뿐이다,좀 늦었을 뿐이다, 나의 뼈는 제멋대로

걸어가고. 차거운 얼굴을 들면 나무들은 이미 그들의

폭을 모두 지워버려,폭이 지워지면 앙상히 드러나는 날들,

내 그를 모를 리 없건만, 오 모를 리 없건만, 외로운 때면

언제나 그들에게 다가간다.

 

이제 누가 나의 자리에 온다고 하면, 보리라, 각각으로

떨어지는 해를, 어둑한 나무들을, 그 앞에 그대를 향해 두

팔 벌린 사내를, 그의 눈에 잠잠히 드는 地平을, 그리고

그의 웃음을, 그대는 보리라.

 

 2

 

어두운 겨울날 얼음은

그 얼음장의 두께만큼 나를 사랑하고

그 사랑은 오랫동안 나를 버려 두었다

때로 누웠다가 일어나

겨울저녁 하얀 입김을 날리며 문을 열 때면

갑자기 내 입김 속에 들어오는 조그만 얼굴

얼굴을 가리는 조그만 두 손

나는 알겠다,언제부터인가

육체의 쓴 맛이 머리칼을 곱게 빗고 흙 내음을 맡으며

얼마나 오랜 나날을 닫힌 문 속에 있었는가를

나는 여기 있다,미친 듯이 혼자 서서 웃으며 

내 여기 있다, 네 조그만 손 등에 두 눈을 대고

네 뒤에 내리는 雪景에

외로울 만치 두근대는 손을 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