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감상적인 감상문: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8번(서울 시향: 2012/2/29)
고클의 fishtail님이 올린 글을 옮겨 왔습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2층 난간에 기대 사람들의 모습을 봅니다.
우아하고 아름답게 차려입은 여성들과 기품있는 신사분들이 기대감에 찬 표정으로 음악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들을 공연의 메인 프로그램은 모차르트의 교향곡도 바흐의 협주곡도 아닌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8번입니다.
1943 년 여름, 세계 2차대전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때 쓰여진 이 곡은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필치로 그려낸 시대의벽화라고 할 만합니다. 쇼스타코비치와 스탈린의 시대를 담은 다큐멘터리에서, 당시를 회고하는 러시아의 할아버지 할머니은 무엇보다
굶주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개와 고양이들이 모두 사라진 거리, 가족의 시신을 줄에 묶어 끌고 가는 여자와 아이들, 그리고 팔과 넓적다리의 살이 도려진 채 빈 집에 버려진 유해들. 그리고 그 굶주림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망과 공포와 폭력이 이 교향곡의 뼈와 살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 곡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 올까? 조금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공연의 첫 곡은 쇼스타코비치가 아닌 무소르그스키입니다. 아주 가볍게 잽을 날리듯 이어가는 관현악은 다소
헐거운 듯, 민둥산의 꿈속에서 벌어지는 악마들의 연회와 괴성을 기대한 청자라면 다소 의아하게 들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교회 종소리가 울릴 때, 비로소 허를 찔린 듯 느끼게 됩니다. 사실 꿈의 악마는 무서운 것이 아니라고요. 전설 속의 마귀들은 우리를 즐겁게 하는 어릿광대일 뿐입니다. 어쩌면 무서운 것은 꿈에서 깨어나는 각성의 순간... 클라리넷과 플롯의 솔로와 현악으로 느리게 느리게 이어나가는 결미는 아주아주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것이 노익장의 내공이구나 싶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이 기묘한 각성은 쇼스타코비치 8번이 그릴 현실의 지옥도의 예고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1부의 두 번째 곡은 글라주노프의 바이올린 협주곡입니다. 쇼스타코비치의 은사였던 글라주노프의 자상한 인품을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곡이었습니다. 저절로 눈을 감고, 상상하게 됩니다. 추운 겨울, 폴폴 끓는 사모바르의 티포트에서 우려낸 홍차에 딸기잼을 넣고, 그 달콤함에 몸을 녹이는 오후. 마른 꽃이 놓인 테이블 주위에는 친구들이 있고... 성당의 종소리는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8번 1악장은 이 모든 정경이 파괴된 시간을 보여줍니다. 게르니카보다 더 큰 화폭 위에, 포연으로
얼룩진 도시가 마치 마술처럼 소환됩니다. 그 위로 시리아 정부군의 폭격기가 초토화시켰다는 홈스가 겹쳐지기도 하고, 용산의 남일당 건물 옥상을 휘감은 불길이 비치기도 하고, 황석영의 <<손님>>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길고 거대한 소나타는 마치 이 모든 구체적인 죽음과 죽임들이 음악 위를 미끄러져 가는 이미지라기라도 한 양, 감정의 형이상학을 펼쳐갑니다. 그것은 그 어떤 지시(reference)도 표상(representaion)도 덧없이 흘려보내며, 역사는 오직 그 모든 사건들이 우리의 몸에 문신처럼 새겨지는 감정의 구조들, 그 기억의 미로들로서만 의미를 갖는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그 헝클어진 길을 통해 다시 우리 삶을 열. 맞습니다. 너무 심각한 얘기들입니다. 문득 캔커피 광고 문구가 떠오르네요. Don’t be serious~. 여기는 홈스가 아니라
서울이고, 남일당이 아니라 예당이고, 연주회가 있던 날 여야의 여성 대표들은 앞 다퉈 남북화해를 강조했습니다. 1악장이 끝나자 관객들은 호응하듯 기침의 푸가토를 펼쳤고, 웃음소리도 들렸습니다. 2악장은 묵직하고 빠르게 시작됩니다. 뭔가 활기가 넘치는 듯한데 묘합니다. 모두들 웃음을 띠고 분주히 살아가는
일터를 생각합니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지만, 열심히 삶의 행진을 합니다. 생의 의지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고, 우리가 펌프질해서 끌어 올려야 하는 것이니까요. 웃는 게 꼭 웃는 것은 아니지만, 웃는 건 분명 웃는 겁니다. 피콜로 소리처럼 오늘도 기를 쓰고 달려야 합니다. 조금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2악장을 마치자 아무도 웃는 사람이 없더군요. 다들 조금은 심각해졌습니다. 3악장의 강렬함은 확실히 현장에서 더 잘 느껴지더군요. 채찍과 케틀드럼이 난무하는 위로 우리의 영웅들이 트럼펫
소리를 타고 뛰어 다닙니다. 능력있는 사람들은 그저 환경에 잘 적응했을 뿐입니다. 역시 사람은 시대를 잘 타고 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시대는 어떤 시대일까요? 잘 모르겠네요. 광경을 음울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신경질적인 예술가의 독백인양 파사칼리아가 펼쳐집니다. 이 악몽은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걸까요? 혹은 이 곡은?ㅎ 이쯤 되어서 저는 집중력을 잃고 어두운 음조 속에 거의 몽환 상태가 되었습니다. 앞에서 서로의 손을 조물락조물락
거리다가 스마트폰질을 하다가 서로의 어께에 기대 자다가 일어나서 머리를 묶으며 다정하게 속삭이는, 왜 방을 잡지 않고 음악회에 왔을까 싶은 커플의 머리에 발차기를 날리며 너희 같은 안일하고 우매한 대중들이 파시즘을 부르는 거야라고 외치는 상상을 했다고 바로 그런 발차기를 실제로 했던 사람들이 파시스트였음을 문득 깨달아 고개를 도리도리 정신을 차리고 귀를 기울이니, 두 번의 거대한 합주- 혹은 폭발 뒤로 C장조의 안온한 종결화음이 다가옵니다. 않을 듯 하지만, 네, 이제 봄이 오는 겁니다. 物極必反. 마치 이 곡이 쓰여진 불과 2년 뒤 8.15가 왔듯이. p.s. 명연을 펼쳐준 지휘자, 협연자, 루세브 악장, 그리고 서울 시향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
바이올린 협연한 샤샤 로제스트벤스키(지휘자의 아들)
지휘자와 부인(피아니스트)
지휘자 겐나지 로제스트벤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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