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애린

옛날의 그 집 ---박경리(마지막 작품) 2008.05.05

마리안나 2008. 5. 5. 17:56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훼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대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던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2008년4월 '현대문학' 발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었습니다.

늘 편찮으신단 소식을 들으면 안타까웠고,오래오래 사셨으면 하고

마음 속으로 빌었었는데...

존경하는 마음으로 읽고 모아 둔 당신의 분신들

오래오래 새기며 간직하겠습니다.

편히 쉬세요.

 

2008년 5월5일 오후 2시 45분 향년 82세로 타계

 




오늘따라 애처로워 보이기도 하고 빛나 보이기도 하는 그분의 흔적들

5월4 일 친정 꽃밭에서 가져온 젊었을적 울엄마 닮은 함박꽃

친정 마당에서 가져온 우리엄마 닮은 철쭉

'그룹명 > 애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성 648 김 영 승  (0) 2008.05.31
째즈 3 ---유 하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0) 2008.05.07
사랑은 - 채호기 <수련>  (0) 2008.05.02
雪嶽別曲 <정소파>  (0) 2008.04.10
반성 760 <김 영 승>  (0) 2008.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