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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우리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미술을 감상한다. 누군가에게 미술감상은 취미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학문이자 직업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처럼 모두 다른 목적을 띄고 감상하는 것임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미술을 마주하는 태도다. 최초의 미술은 기록 혹은 주술 등 하나의 ‘수단’으로 출발했으나, 이 수단은 르네상스시기를 거쳐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숭배하는 하나의 ‘가치’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회화에서 명화가 된 다수의 작품들은 정갈하고 깨끗한 공간 속에 벽에 걸린 상태로 존재하게 되었고, 대중과의 소통은 거리두기로 이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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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여기에서 질문 두 가지. 미술은 늘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하는가?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꽤 오래전부터 대중은 ‘그렇다’ 는 시각으로 접근한 것이 사실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미’ 의 시선으로 작품을 평가하곤 한다. 그럼 하나 더. 미술은 왜 대중보다 우위에 있는 존재로 인식되는가? 작품을 평가절하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술복제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여전히 미술에 ‘숭배적 가치’를 부여하는 시선이 불편한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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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얼핏 보면 폴 맥카트니로 착각하기 쉬운 스펠링을 가진 미국작가 폴 매카시 (1945~). 필자는 유럽여행 중 뮌헨의 현대미술관 haus der kunst (하우스 데어 쿤스트)에서 그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 미술관 벽면을 가득 채운 현수막 속 그림은 바로 작가의 2001년작 ‘Penis Hat’. 바스키아의 낙서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이미지에 이끌려 미술관에 들어서는 순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엄청난 광경-난장판을 경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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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은 불편하다. 포르노에 가까운 선정성과 폭력성, 신체훼손과 해체 등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품이 주는 불편한 첫인상을 접고 바라보면 회화, 설치,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서구문화를 비판하는 그의 광범위한 작품세계를 느끼게 된다. 그는 기존의 고정관념과 체제를 비틀고 조롱한다. 디즈니를 희화화하고, 평화, 자유, 평등을 외치는 국가적 운동 이면에 여전히 소수를 경계하고 타자화하는 미국 외 서구사회의 보수세력을 비틀며, 전쟁과 남성중심사회의 폭력성을 ‘해적’ 이라는 아이콘으로 상징화하여 표현한다. 이미 익숙해진 서구문화들을 전복하는 그의 작품은 아름다움의 대상도, 숭배의 대상도 아니다. 현실을 그 만의 거친 시선으로 드러낸 것뿐이다. 적나라하게 표현된 작품 속에서 관객은 차마 드러내고 싶지 않은, 굳이 보고 싶지 않은 부조리한 사회와 현실을 마주한다. 그의 작품을 볼 때마다 마치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몰래 훔쳐보는 기분이 드는 건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움을 배반한 추한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모두는 당황하지만, 동시에 왜 그동안 우리는 이토록 솔직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된다. 미술도, 미술이 표현하고 있는 세상도 그리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연일 신문지상에 글로 배설되는 ‘각종 더러움’ 에 비하면 폴 매카시가 표현한 날 것의 진실은 순수함 그 자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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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문화재단 전시사업팀 손가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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