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의 그림을 보며, 그 속에 등장하는 세계지도, 은화, 중국 도자기, 커튼, 카페트 등에 주목해 본 적이 있는가. 비슷한 시기에 연작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지리학자>와 <천문학자>는 화면 전면에 부각된 천과 인물의 의복에서 차갑고 선명한 명암 대비를 보여줌으로써 변화하는 빛의 리듬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바로크 회화이다. 베르메르가 지도나 천구를 주제로 택한 것은 17세기가 ‘발견의 시대’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지도와 같은 당대 중산층의 실내에 자주 등장하는 장식을 통해 지식의 알레고리를 보여주고자 했으며, 이는 자연스레 17세기의 역사로 들어가는 문이 된다. 당시 풍속 화가들에게 인기 주제, 편지를 쓰는 행위를 표현한 <연애편지> 역시 17세기 개신교 목사들의 강연과 교육의 혜택을 통해 문맹률이 현저히 낮아지면서 편지 쓰기가 유행처럼 번지던 당대 사회에서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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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를 두고, ‘적은 수의 인물과 물체로 단순한 실내 정경에 독특한 생명을 불어 넣는다’ 라고 평한 A.B 드 브리스의 말처럼 베르메르는 예술의 소재로 인정받지 못했던 일상의 단편을 하나의 이상적 세계로 형상화했다. 그리고 그는 미술사와 역사의 경계에서 17세기 교역망의 확장 과정을 그림 속 소품을 통해 보여준다. 그림의 주제를 위해 그린다기 보다 그림을 위해 그 주제를 이용하는 듯 한 태도이다. 그 과정에서 이전과 다른 신세계에 대한 열망, 동서양 사람들의 세계화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들이 델프트의 화가, 베르메르의 아뜰리에로 들어온 소품들에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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