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30일 새벽 03시05분
달이 해처럼 떠있는 <성삼재>를 들머리로 지리산 종주가 시작됐다.
어렵게 잡은 일정이 하필 장마중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오늘은 다행히 날씨가 좋다.
04시 쯤< 노고단>에서 생각은 없지만 장도에서 조금은 든든 하라고
누룽지로 야식도 조식도 아닌 애매한 한끼를 만들고
배낭을 챙겨 일어서려니 가까이 보이는 반야봉 뒤로 일출의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한참을 기다려 반야봉에 가려진 반쪽짜리 일출을 보며
난 맘속으로 야무지게도 천왕봉에서의 일출을 꿈꾸고 있었다.
이 산에서 물 맛이 가장 좋다는 <임걸령>에서 식수를 채우고
전남,전북,경남의 경계가 맞닿은 곳 삼각뿔 모양이
경계석으로 세워져있는<삼도봉>을 지나 10시10분 <연하천 산장>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는데 일곱시간 여를 걸어 온데다가, 배낭은 무거워
혼자서 들어 메기가 힘들 정도여서, 기운이 많이 빠진상태라 밥 맛은 없고
눈 꺼풀이 자꾸 내려와 감긴다.
오랫만에 양치질로 정신을 깨우고 다시 오른다.
<형제봉(1452m)>지나 <벽소령 대피소>에서 휴식을 취하며 중간 점검을 하고
<선비샘>에서 다시 식수를 보충했다 세석산장 까지는 세시간 정도 걸릴거 라는데
슬슬 무릎도 걱정되고 한 눈금 정도의 힘 밖엔 안 남아 있는것 같다.
마의 육백여 철계단을 지나 아늑한 곳에 긴 여정의 끝 <세석산장>이 엎드려 있었다.
20년 전 그 세석평전이 아니다 너무 낯설다.
산장은 깨끗하고 넓었다 뜰엔 이미 지친 모습들이 가득 모여들어 씻기도 하고 먹으면서
하루내내 무겁게 매달고온 피로들을 털어 내고 있었다.
숙소에 자리 배정을 받고 잠깐 바람 쐬러 뜰에 나와 앉았더니
안개인지 구름인지 하얀 습기 무리들이 냉기를 훅훅 뿌리고 지나간다
별이 보이면 새벽 한시에 일어나 천왕봉 일출을 보러 가기로 했는데...
별이 없다.
삼대가 적선을 하며 산 사람만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라더니
이럴땐 조상을 탓 해야 하나 나를 돌아 봐야하나
불안한 맘으로 들어와 모포를 깔고, 먼저 고생한 내 발에게 "쎈쎈파스"를
훈장으로 붙여주고 부실한 내 몸 지탱해준 지팡이 "렉"옹에겐 뽀뽀를
산행친구 1호 등산화"발란"과 2호 배낭 "줄루"에겐 머리 맡에서 내 숨소리 들으며
자는 영광을 주었다.
7월1일 03시40분(그러고 보니 두 달에 걸친 산행이다)
여기저기 알람소리에 잠을깨니 거의다 일어나 근심스럽게 앉았다
귀신소릴 내며 바람이 불고 빗소리는 거세다
지리산 전면이 입산통제란다.
07시30분에 <거림골>로 하산을 해야 한다고...여기저기 개켜 놓았던
모포를 다시 덮고 눕는 사람들...
옛 추억이 있는 장터목,천왕봉은 그야말로 그림자도 못보고 가야한다.
이미 잠은 천왕봉쯤 달아나고 멍하니 앉았다가 문득 지리산 어느산장에 가도
"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란 책들이 장르별 시대별로 엮어져 꽂혀 있던게
생각나서 손전등을 들고 더듬어 골라온 책/빗 소리 속엔 침묵이 숨어 있다/로
시작되는 김지하의"빗소리"와 "타는 목마름으로"였다.
어제는 정말 이 시 처럼"타는 목마름으로" 치열하게 산을 탐닉했고 천왕봉 안아 보기를 갈망 했었거늘...
육포를 우물거리며 시집을 읽다가 갑자기 흡 하고 웃음이 났다 이 새벽에 육포라니
"허기진 내 영혼이여"
먼저 종주를 끝낸 친구가 보내줬던 먹거리 중 하나인 육포다.
"친구야 천왕봉에 네 안부전해 주기로 했었는데 미안하다".
하산길 폭우로 계곡물이 무섭게 불어 나고 있었다.
<거림골>에서 우린 돌이 되고 나무가 되고 숲을 서성이는 비가 되어
어두운 숲 터널을 미끄러져 나오고 있었다.
그 장맛비 속에서도 산딸기가 무더기로 익어 세 시간 가까이
침묵으로 흘러 내리던 우리 입에, 가슴에 새금새금한 기운을 넣어 주었다..
산딸기 향이 가시기도 전에 하산길은 끝나 있었다.
그러나 1무1박3일 동안 천왕봉은 볼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지리산 또 갈 핑계가 생겼다^^
"잘 있거라 천왕봉 내 다시 가리니".
산행하는 동안 응원전화 ,문자
보내준 친구들 고맙고 감사해^^
그리고 좋은 산행하게 기회 준
미자야 고맙고 수고했다.
'밥상 > 자화상(自畵像)' 카테고리의 다른 글
퇴근 길 (0) | 2007.09.06 |
---|---|
출근 길 (0) | 2007.09.06 |
[스크랩] 다녀 왔습니다 (0) | 2007.08.24 |
휴식년에 들어간 산에게 (0) | 2007.08.19 |
침 잠(沈 潛) (0) | 2007.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