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령, 가을 (2008 신춘문예 당선시집) 임 채 성 높새도 이쯤에 와선 가쁜 숨 헐떡인다 겨울로 가는 해가 더딘 걸음 재촉하지만 한 박자 쉬어가고픈, 박한 삶의 나들이 여기 들른 사람치고 짐 없는 이 또 있을까 신발끈 고대 풀고 배낭마저 부려보면 버려야 가볍다는 걸 저리도록 알 것 같다 더 높이 서기 위해 저마다 산을 오를 때 백두의 곧.. 그룹명/애린 2008.02.22
내가 나에게 <김지하> 김 지 하 내가 나에게 말합니다. 혼자 가세요 바다가 빛납니다. 거기 혼자 가세요 고요한 복판의 한 거기서 들끓는 화요일의 혁명들 이젠 혼자 가세요 바람도 불고 구름도 흐릅니다 그림자들은 나날이 짙어집니다 그 속을 이제는 혼자 오직 혼자서만 가세요 아무도 가까이 없습니다 돌아.. 그룹명/애린 2008.02.21
12월의 숲 (나는 너다) 황 지 우 눈맞는 겨울나무 숲에 가보았다 더 들어오지 말라는 듯 벗은 몸들이 즐비해 있었다 한 목숨들로 連帶해 있었다 눈맞는 겨울나무 숲은 木炭畵 가루 희뿌연 겨울나무 숲은 聖者의 길을 잠시 보여주며 이 길은 없는 길이라고 사랑은 이렇게 대책 없는 것이라고 다만 서로 버티는 것.. 그룹명/애린 2008.01.18
춤 (우리들의 시간) <박경리> 박 경 리 화랑처럼 춤을 추고 싶었다 처용처럼 춤을 추고 싶었다 백결(百結)의 누더기 걸치고 춤을 추고 싶었다 유리창 산산히 부수고 아아 창공을 날고 싶다 그러나 미치지 않고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룹명/애린 2008.01.12
겨울날 斷章 (견딜수 없이 가벼운 존재들) <황동규> 황 동 규 1 좀 늦었을 뿐이다,좀 늦었을 뿐이다, 나의 뼈는 제멋대로 걸어가고. 차거운 얼굴을 들면 나무들은 이미 그들의 폭을 모두 지워버려,폭이 지워지면 앙상히 드러나는 날들, 내 그를 모를 리 없건만, 오 모를 리 없건만, 외로운 때면 언제나 그들에게 다가간다. 이제 누가 나의 자리에 온다고 하.. 그룹명/애린 2008.01.01
산에 오는 이유 이 생 진 산에는 이빨이 있다 가시도 쇠붙이도 갉아먹는 이빨이 있다 그런데 산은 입을 열지 않았다 한 번도 열지 않은 입에서 많은 말이 나왔다 바위 같은 말들이 많이 나왔다. 소리없는 말들이 많이 나왔다 들은 적은 없는데 많이 들려왔다 용아장성 운악산 그룹명/애린 2007.12.14
[스크랩] 나를 위로하는 날 / 이해인 나를 위로하는 날/이해인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큰일이 아닌데도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죽음을 맛볼때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나를 잠못 들게 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닫고 숨고 싶을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내라고 이.. 그룹명/애린 2007.12.07
11월의 나무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 황 지 우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이 마구 가렵다 주민등록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 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 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測光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11월의 나.. 그룹명/애린 2007.12.05
반성 463 <김영승> 김 영 승 너보다는 내가 더 외롭다 왜냐구? 너보다는 내가 더 아름다우니까 너보다는 내가 더 괴롭다 왜냐구? 너보다는 내가 더 심오하니까 너보다는 내가 더 슬프다 왜냐구? 너보다는 내가 더 순결하니까 어때? 똑같지, 너와 나는? 그룹명/애린 2007.12.02
내 마음의 비무장지대 <최 영 미> 최 영 미 커피도 홍차도 아니야 재미없는 소설책을 밤늦도록 붙잡고 있는 건 비 그친 뒤에도 우산을 접지 못하는 건 어제의 시를 고쳐쓰게 하는 건 커피도 홍차도 아니야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어 돌아누워도 엎드려도 머리를 헝클어도 묶어보아도 새침 떨어볼까요 청승 부려볼까요 처맨 손 어디 둘 곳 .. 그룹명/애린 2007.11.29